인간은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이승과 저승의 삶을 비교하고 상상한다. 심지어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도 한다. 다른 동물들이 인정 하든 안하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과도 통하는 말이다.
죽음과 함께 영생과 환생을 믿는다. 죽되 죽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주검을 잘 처리하고 이승과 마찬가지로 저승에서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 가운데 우리 겨레의 특이한 관습이 있다. 바로 가묘와 수의다.
수의라는 말은 윤년이나 윤달에 수의를 준비하라는 광고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만 가묘라는 말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있는 말이 아니다. 가묘는 가짜 묘지를 말한다. 주검을 매장하지 않은 묘이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자신이 죽어서 들어가게 될 묘지를 미리 찾아서 정하고 자신을 위한 묘를 만든다. 자신의 묘를 만든 뒤에 묘 주변의 치장도 스스로 하고 틈만 나면 묘에 난 잡초를 뽑는 등 묘지 관리에 정성을 기울인다. 손주들과 같이 다니면서 자신이 죽은 뒤에 들어갈 자리임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수의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죽은 뒤 입고 갈 옷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지금이야 이미 만들어진 수의들로 준비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수의뿐만 아니라 남편의 수의까지도 정성들여 준비한다. 직접 좋은 옷감을 준비해서 손수 마름질과 바느질을 하여 만든다. 틈만 나면 수의를 꺼내 정성스레 손을 보곤 한다. 손주들에게 죽어서 입고 갈 옷이라고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면서 뿌듯해 한다. 수의를 미리 마련해 놓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도 있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준비해놓으려고 애쓴다. 가묘나 수의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의 대한 경건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다.
자신의 가묘나 수의를 매만지면서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아마도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내세는 물론이고 자손과 가문의 무궁한 행복과 번창을 내심 빌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동물도 인간을 향해 너희들만 죽음을 안다거나 만물의 영장이라 한적은 없지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만큼은 맑고 깨끗할 것이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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