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다음날인 2013년 7월 19일 오후 10시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학생들의 시신이 안치된 태안의료원을 찾았다. 그는 유족 앞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해병대캠프 사건의 진위를 확실히 밝히고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다음날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의 구두약속을 믿을 수 없어서다. 그래서 '해병대캠프 사망 학생 유족자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해병대 사칭한 모든 캠프 중단,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벌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랬더니 다음날 교육부가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유족들이 장례절차를 진행한 것도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발인 전날인 23일 밤 서만철 공주대 총장과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 사무총장, 교육부 사무관(보상업무) 등이 유가족을 찾아왔다.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보상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유가족들은 국가보상금과 특별위로금 지급,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 주도로 장학재단 설립, 교내 제막비와 흉상 등 희생 자녀 명예회복, 국가차원의 의사자 건의, 명예졸업장 수여 등 6가지를 요구했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인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유족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수용했다. 당시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 사무총장이 직접 글로 썼고, 그 내용을 공주대에서 컴퓨터로 작성해 인쇄했다.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공주대 총장이 확인함'이라는 문구가 적힌 합의서에 서 총장과 유족대표가 함께 서명했다.
합의 내용은 새벽 1시 장관에게 보고했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교육부 장관과 직접 전화통화를 요구하며 장례를 거부했다. 출상 직전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이후식 유족 대표는 “전화통화를 못했지만, 보상 담당 사무관이 '장관께 보고됐으니 장례를 진행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8월에 교육부 보상팀을 만났다. 그런데 합의했던 위로금을 절반만 줄 수 있다고 했다. 유족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기다리다 지친 유족들은 교육부 장관 면담과 합의서를 장관이 직접 확인했는지를 질의했다. 지난 16일 답이 왔다.
우선, 교육부 장관 면담은 국정감사와 시급한 교육현안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합의내용은 유선으로 보고했단다. 보고 내용은 '요구 사항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미합의로 장례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장관님이 장례식 참석을 위해 출발해야 하는지 여부 등'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합의서는 공주대 총장이 서명했지, 장관이 직접 한 건 아니다. 보상문제는 교육부와 유족 사이의 문제다. 보상은 완전히 합의하지 않았지만,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후식 대표는 “장관을 장례식에 참석시키기 위해 거짓으로 합의했다고 한 것이냐. 우리가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며 “아직 이뤄진 건 하나도 없다. 죽을 각오까지 한 상태”라고 했다.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도 마찬가지다.
합의내용을 직접 썼던 당시 사무총장이 해임된 후 장학재단 설립은 사실상 없었던 일로 돼버렸다. 재단 설립을 위해 동문을 비롯해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1억원이 넘는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식이 없다. 어떻게 됐는지 문의하는 유족에게 오히려 장례식장 부의함에 들어왔던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이달초 동창회장을 만났던 한 유족은 “아이들이 졸업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동문이냐고 막말을 했다”며 “유가족을 모욕하고 하늘에 있는 아이들을 또다시 울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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