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경제부 기업과학팀 부장 |
-파스칼
지난 추석연휴, 고향에 다녀온 A씨는 아들과 나눈 대화는 '뭐 먹을래?', '화장실 갈래?' 등 휴게소에서 나눈 말이 대화의 전부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학생 아들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단다. SNS를 통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빠르게 손만 움직일뿐 가족간 대화의 틈을 주지 않았단다. 고향에 도착해서도 어른들께 인사하고서 또다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단다. A씨는 도로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줘 다소 고맙기만 했던 스마트폰이 야속하기만 했단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대화가 없어진 가족의 모습은 이제 명절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을 듯싶다.
정보와 스피드, 디지털기기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는 속도를 강요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은 왜 달리고 있는 지도 모르게 만들고 있다.
A씨처럼 스마트폰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겪는 부모도 65%에 달한다는 통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와 자녀 간 갈등요인 1위가 성적이 아닌 스마트폰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자리한 스마트폰 중독은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다. 부모들 역시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는 건 마찬가지.
점심때 식당에 가보라. 분명 동료나 친구들과 식당에 왔음에도 말 한마디 없이 모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어느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다반사가 돼 버렸다. 기존 지연, 혈연, 학연의 인간관계보다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맺어지는 디지털 네트워킹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가족 등 주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소원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1차 집단에서 스스로 소외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개인은 소외될 뿐이다.
왜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학자인 바엘리는 이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재밌는 연구를 발표했다. 축구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를 관찰한 그는 키커 30%는 골대 오른쪽, 30%는 중앙, 30%는 왼쪽으로 찬다는 것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것은 골키퍼의 반응이다. 절반은 왼쪽, 절반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키커가 찬 볼의 30%가 중앙으로 날라오는데도 골키퍼는 중앙에 서 있질 않았다. 골키퍼는 틀린 방향으로라도 몸을 날리는 편이 훨씬 더 나아 보이고 또 심적으로 덜 괴롭기 때문이다. 회사나 조직도 페널티킥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잘되면 능력을 인정받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같은 행동편향은 인간이 생존을 위한 진화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맨몸으로 맹수들과 맞서야 했던 원시시대 사람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도망가던지 맹수와 맞서 싸우든지 해야했다. 생존을 위해 생각보다는 행동해야 한다는 유전자가 후손에도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인간의 행동편향은 디지털기기를 만나면서 가속화 되고 있는 느낌이다. 대화를 끊으면서까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얻은 수많은 뉴스나 정보가 과연 개인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한 안무가가 폰 스택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식당에서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 한복판에 쌓아놓고 있다가 계산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전화나 문자를 확인하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애물단지인 스마트폰을 보지 말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한마디로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디지털 디톡스(Detox)의 한 방안일 것이다. 단식으로 몸에 쌓인 독소나 노폐물을 해독하듯이 스마트 기기를 잠시 꺼둠으로써 정신적 여유를 회복한다는 취지다. 디지털을 통해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과 그런 경험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 디지털기기와 거리를 두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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