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물레방아 도는 진짜 내력

  • 오피니언
  • 문화칼럼

[문화토크]물레방아 도는 진짜 내력

  • 승인 2013-08-18 12:18
  • 신문게재 2013-08-19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도 물레방아가 나온다. 그런데 내밀한 욕망의 해방공간이던 우리 물레방앗간과는 용도부터가 다르다. 주인공이 그걸 보며 ‘생의 의미’를 깨닫는 매개체로나 등장하는 것이다.

괴산 산막이길(충청도양반길)에서 만난 물레방아는 '물방앗간 뒷전'에서도 사랑을 맺기가 힘든 구조지만 정취만은 물씬하다. 물레방앗간의 한국적 위상은 각별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오늘 밤, 물레방앗간에서 : 한국영화 속 에로틱한 장소들'이라는 기획전 제목만으로도 설명된다. 김유정 '산골나그네', 나도향 '물레방아'의 그 물레방앗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하룻밤 나누던 공간도 물레방앗간이다. 슈베르트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서 방앗간집 아가씨의 마음을 얻지 못해 절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금이라면 실레마을 물레방아는 이동능력과 밀폐 공간을 갖춘 자동차로 변용(變容)됐을 것이다. 얼마 전 대전시청 지하주차장이 데이트 장소로 뉴스에 잠깐 오르내렸는데, 자동차가 인화성 높은 연애의 필수 장치임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자동차가 성혁명 시대를 주도했고 “자신의 신체를 소유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여성은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마거릿 생어가 부추겼던 1920년대의 미국만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내력은 우리에게도 깊다. 미국에서 1930년대 욕실 없는 26가구 중 21가구가 자동차를 구입했을 무렵, 일제 치하 서울 남산에서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자동차 연애 행각을 벌였고, 당시 신문에 비판 기사가 나온다. 또한 말도 많고 연구도 많다. 심지어 자동차는 페니스이고 내부는 바기나를 상징한다는 발칙한 분석이 있다.

차체 디자인에 인체의 허리와 가슴, 쇄골과 골반을 적용한 요즘 차의 공통점은 숨막히는 뒤태 라인 강조다. 사람 때문에 차가 섹시한지 차 때문에 사람이 섹시한지 혼동하게 한다. 미녀 모델과 차를 동일시해야 구매욕이 치솟고, 논리적 설득보다 되도록이면 비합리적인 영향력을 겨냥해야 충동구매 유발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자동차 광고에 섹시한 여성을 함께 등장시키는 이유를 고전적 조건형성 과정으로 설명하라'는 '연구·토론 문제'까지 어디에선가 봤다.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침대' 만들기 경쟁이다. 모 자동차사 오너가 좌석을 불편하게 만들라고 심술부리자 경쟁사는 침대 대용으로 좌석을 접도록 배려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덕에 주차 여건만 보장되면 자동차는 감추고 싶은 가장 내밀한 연애 감정을 숨기기에 유리한 방주가 됐다. 거기에 딱 어울리는 밤의 명소 중 한 곳이 대전 뿌리공원이다.

9월 1일 뿌리공원 유료화에 따른 걱정에는 (오후 6시 이후는 어차피 무료지만) 이 세계 유일의 성씨 테마공원에서 호젓하게 자신만의 뿌리를 찾으려는 드라이브인 연인들이 방해받지 않을까 하는 시시한 것도 있다. 연애의 달인, 더러는 숙맥들이 몰고온 차에는 엉덩이가 섹시한 차, 다소곳이 꼬리 내린 차, 치마를 확 걷어 올린 해치백도 보인다.

그걸 보고 스친 생각이 있다. 물길 따라 생겨 외진 물레방앗간이 그랬듯이 물길 따라 찾아온 자동차는 아직도 '혁명' 아닐까? 크리스 라반은 “자동차 화제(話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상대방은 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규정했다. 내놓고 말할 수 없으니까 “자동차를 구실로 삼아 페니스의 크기나 힘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니! 심리학자의 분석이지만 깐죽임이 좀 심했다. 자동차 화제의 진도는 그냥저냥 여기까지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