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면 실레마을 물레방아는 이동능력과 밀폐 공간을 갖춘 자동차로 변용(變容)됐을 것이다. 얼마 전 대전시청 지하주차장이 데이트 장소로 뉴스에 잠깐 오르내렸는데, 자동차가 인화성 높은 연애의 필수 장치임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자동차가 성혁명 시대를 주도했고 “자신의 신체를 소유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여성은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마거릿 생어가 부추겼던 1920년대의 미국만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내력은 우리에게도 깊다. 미국에서 1930년대 욕실 없는 26가구 중 21가구가 자동차를 구입했을 무렵, 일제 치하 서울 남산에서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자동차 연애 행각을 벌였고, 당시 신문에 비판 기사가 나온다. 또한 말도 많고 연구도 많다. 심지어 자동차는 페니스이고 내부는 바기나를 상징한다는 발칙한 분석이 있다.
차체 디자인에 인체의 허리와 가슴, 쇄골과 골반을 적용한 요즘 차의 공통점은 숨막히는 뒤태 라인 강조다. 사람 때문에 차가 섹시한지 차 때문에 사람이 섹시한지 혼동하게 한다. 미녀 모델과 차를 동일시해야 구매욕이 치솟고, 논리적 설득보다 되도록이면 비합리적인 영향력을 겨냥해야 충동구매 유발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자동차 광고에 섹시한 여성을 함께 등장시키는 이유를 고전적 조건형성 과정으로 설명하라'는 '연구·토론 문제'까지 어디에선가 봤다.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침대' 만들기 경쟁이다. 모 자동차사 오너가 좌석을 불편하게 만들라고 심술부리자 경쟁사는 침대 대용으로 좌석을 접도록 배려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덕에 주차 여건만 보장되면 자동차는 감추고 싶은 가장 내밀한 연애 감정을 숨기기에 유리한 방주가 됐다. 거기에 딱 어울리는 밤의 명소 중 한 곳이 대전 뿌리공원이다.
9월 1일 뿌리공원 유료화에 따른 걱정에는 (오후 6시 이후는 어차피 무료지만) 이 세계 유일의 성씨 테마공원에서 호젓하게 자신만의 뿌리를 찾으려는 드라이브인 연인들이 방해받지 않을까 하는 시시한 것도 있다. 연애의 달인, 더러는 숙맥들이 몰고온 차에는 엉덩이가 섹시한 차, 다소곳이 꼬리 내린 차, 치마를 확 걷어 올린 해치백도 보인다.
그걸 보고 스친 생각이 있다. 물길 따라 생겨 외진 물레방앗간이 그랬듯이 물길 따라 찾아온 자동차는 아직도 '혁명' 아닐까? 크리스 라반은 “자동차 화제(話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상대방은 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규정했다. 내놓고 말할 수 없으니까 “자동차를 구실로 삼아 페니스의 크기나 힘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니! 심리학자의 분석이지만 깐죽임이 좀 심했다. 자동차 화제의 진도는 그냥저냥 여기까지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