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거리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그동안의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모여 있는 상점들이 많지 않더라도 특성을 잘 보존하며 전문화가 이뤄졌을 때 시민들이 알아주는 특화거리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대전의 특화거리를 넘어 타 지자체의 특화거리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차례다. 경기도 여주군의 중앙로문화의거리와 부산시 부산진구 서면의 특화거리는 각각 규모는 작은데 특성화를 이루거나 큰 규모의 특화사업을 진행한 곳이다. 두 지역의 사례를 통해 대전 특화거리의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여주군에 자리한 세종대왕 영릉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한글에 대한 상인들의 자부심이 조화돼 가능했던 것으로 지역을 특화하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영문자를 몰아낸 한글간판=경기도 여주군의 중앙로문화의거리는 대전 으능정이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보행자 전용보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4~5층짜리 건물이 이어진 것이나 각종 브랜드 의류매장이 주류를 이루며 젊은 이들이 찾는 대표적 상권이라는 점이 그렇다.
또 여주의 중앙로문화의거리가 군청앞에 위치한 것이나, 여주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상권 등장에 위기에 직면한 것까지 원도심의 으능정이거리와 흡사하다. 다만, 여주군의 중앙로문화의거리는 한글간판으로 특성화를 추진하며 전국적인 관심 대상이 됐다.
시작은 안전행정부가 전국 시·도를 대상으로 공모한 간판정비사업에 여주군 중앙로상인회가 해당 골목상인들의 동의를 얻어 응모한 데서 출발한다.
거리의 상가 간판을 영문자 대신 한글을 사용하자는 것으로 안전행정부가 심사를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여주 중앙로문화의거리 87개 업소에 간판 199개를 떼어내고 한글간판을 내거는 정비사업을 단행했다.
화장품 브랜드 'MISSA'와 'SKINFOOD'는 '미샤'와 '스킨푸드'가 됐고 스포츠의류 브랜드 'PROSPECS'는 '프로스펙스'라고 간판이 걸렸다.
여주군 도시과 박상림 경관디자인 팀장은 “해당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 영문자를 한글로 바꾸는 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며 “지저분한 간판을 정비해 깨끗한 거리가 됐고, 한글이라는 특징까지 갖춰 타지역에 본보기가 된 좋은 사례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이 여주군에 위치했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만들었다가 1469년(예종 1) 여주로 옮겨 왔다.
영릉이 있는 여주군은 그동안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하는 숭모제전을 매년 개최하고 세종대왕 전국한글휘호대회를 여는 등 한글에 대한 지역적 자부심을 키워왔다. 덕분에 간판에 한글을 사용하자는 제안이 나올 수 있었고, 상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영문자로 표기하는 브랜드의 상표를 한글로 바꾸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중앙로문화의거리내 유명메이커와 의류ㆍ핸드폰 등 영문으로 간판을 표기한 28개 업소의 본사를 설득해야 했다. 다행히 중앙로문화의거리에 있는 모든 브랜드의 본사를 설득할 수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한글간판이 등장할 수 있었다. 중앙로문화의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샤(MISSA), 휠라(FILA), 크로커타일(CROCODILE), 티월드(T WORLD) 등의 한글간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여주중앙로상인회 김태식 총무는 “전국에 판매점을 가진 영문자 브랜드의 본사 입장에서는 한 곳에만 한글 표기를 허용하기 쉬운 게 아니었겠지만, 여주의 역사적 특성과 해당 점포주의 노력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글간판 2차 사업 앞둬=여주군 중앙로문화의거리는 올해 한글간판 2차 사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한글간판 1차 사업에 대한 좋은 평가 덕분에 안전행정부가 심사한 우수지역에 선정돼 국비를 다시 지원받게 됐다.
중앙로 남은 구간 200m에 130개 업소를 대상으로 무질서한 간판을 철거하고 한글간판을 부착하는 사업이 올해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중앙로문화의거리 상인들은 한글간판이 전통적인 중심상권을 지키는 특성화 전략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문간판을 한글로 바꾼 현지의 한 상인은 “중앙로의 상인들 대부분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한 토박이여서 서로 대화가 잘되는 편이고 간판이 바뀌었다고 영업에 지장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여주군의 자부심을 지켜간다는 점에서 한글간판은 앞으로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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