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정말 사적인 독서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우난순]정말 사적인 독서

[중도시감]우난순 교열부장

  • 승인 2013-08-08 15:08
  • 신문게재 2013-08-09 21면
  • 우난순 교열부장우난순 교열부장
▲ 우난순 교열부장
▲ 우난순 교열부장
유원지의 공중화장실 낙서만큼이나 구차하고 옹색했던 대학시절,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책은 나를 또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그때는 늘 그랬다. '호헌철폐',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매캐한 취루탄 냄새가 대학 캠퍼스에 진동하던 시대였다. 전두환 정권은 야만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바빴고 나는 알 수 없는 결핍감과 불행한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희망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학교 도서관 참고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 고통을 견뎠다. 책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까만 활자를 더듬어가며 읽기에 매혹된다는 건 분명 인간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1980년 중2때였을 거다. 방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보던중 연재소설의 삽화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남녀의 성애장면이 묘사된 그림으로 내용역시 어린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최인호의 『불새』였다. 알수 없는, 궁금한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본 후 난 탐욕스럽게 지나간 신문을 뒤적이며 『불새』를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신문을 통해 '광주사태'와 전두환도 알게 됐다. 광주에서 “총칼을 들고 미쳐날뛰는 폭도들”을 전두환의 지휘하에 계엄군이 진압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5·18광주를 비롯해 크고작은 희생 위에서 8년간 대통령직을 누렸던 전두환 전 대통령. 드디어 '전두환 추징법'이 발효됐다. 1600억원의 미납금을 제대로 환수할 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늘 그렇듯 권력자의 언저리엔 강한 권력에 매혹된 이런저런 부류의 인간들이 얼쩡거린다. 미당 서정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서정주는 1987년 전두환의 56회 생일에 바치는 시 '처음으로'를 썼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드소서/…'. 정말 낯뜨겁지 않은가.

불멸의 문학성을 가지며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인사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권력자에게 저런 찬양시를 바쳤다. 그가 전두환을 우러러보고 있을때 학생들은 '국화 옆에서'를 암송하며 시인의 깊은 시상을 공감하려 애썼다.

작가는 삶과 작품을 분리해서 평가받을 수 없다. 19세기말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서 최소한 기본적 의무가 요구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부당한 권력에 거부할 줄 아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반면 서정주는 일본 제국주의, 이승만, 전두환 등 전 생애에 걸쳐 명예와 권력을 추구했다. '떠돌이 창녀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같은 변산격포로나 한번 와 보게'라는 빼어난 비유로 훌륭한 시를 쓴 그가 치졸한 행동을 반복했다는 점은 문학사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다.

수치심을 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의 멘토가 되는 작가도 있다. 조지 오웰. 그는 지독한 반골이었다. 그는 빈곤과 좌절을 겪으며 권위에 대한 타고난 반감이 컸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는 시대를 거슬렀고 파시즘, 전체주의, 교조주의, 스탈린 체제와 싸웠다. 그는 사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이단아였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싶어 했는지 분명히 알았다. 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대공황을 겪으면서 자신의 미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고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작가였다.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부두로 가는길』, 『1984』 등은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도 인용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20세기의 한 세기는 권력자에게 낯뜨거운 찬양시를 바친 서정주와 반골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다간 조지 오웰이 존재한 시대였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은 참 중요하고 어렵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도 이 삶이 기꺼운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 갇혀 살지 않고 책 속에서 내 삶을 끝없이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전두환 비자금 환수의 마지막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지금, 서정주와 조지 오웰을 읽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충남대학교 동문 언론인 간담회
  2. 대전성모병원, 개원의를 위한 심장내과 연수강좌 개최
  3. 대전 출신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사표
  4. 대전 정림동 아파트 뺑소니…결국 음주운전 혐의 빠져
  5.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 대전·세종 낙폭 확대
  1.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지면 소장 취임…"통합방위 고도화"
  2.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 체포…피해 귀금속 모두 회수 (종합)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트리 불빛처럼 사회 그늘진 곳 밝힐 것"
  4. '꿈돌이가 살아있다?'… '지역 최초' 대전시청사에 3D 전광판 상륙
  5.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2000만 원 귀금속 훔쳐 도주

헤드라인 뉴스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전면 시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책 방향이 대폭 변경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열린 13차 전체회의에서 AIDT 도입과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교과서의 정의에 대한 부분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 '교과서'인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학교가 의무..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대전시가 지역 마스코트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꿈돌이 라면' 제작을 추진한다. 28일 시에 따르면 이날 대전관광공사·(주)아이씨푸드와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 및 공동브랜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대전 꿈씨 캐릭터 굿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라면제품 상품화'를 위해 이장우 대전시장과 윤성국 대전관광공사 사장, 박균익 ㈜아이씨푸드 대표가 참석했다. 이에 대전 대표 캐릭터인 꿈씨 패밀리를 활용한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공동 브랜딩, 판매, 홍보, 지역 상생 등 상호 유기..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가 30년 묵은 숙제인 안면도 관광지 조성 사업 성공 추진을 위해 도의회, 태안군, 충남개발공사, 하나증권, 온더웨스트, 안면도 주민 등과 손을 맞잡았다. 김태흠 지사는 28일 도청 상황실에서 홍성현 도의회 의장, 가세로 태안군수, 김병근 충남개발공사 사장, 서정훈 온더웨스트 대표이사,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김금하 안면도관광개발추진협의회 위원장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나증권 지주사인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회장도 참석,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면도 관광지 3·4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