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으로 쓰고 '논다'의 '논'으로 읽고. 왜 그럴까?
“아니, 국회의원들이 '나라 국(國)' 자 보람(배지)을 버젓이 달고 다니는 꼴 보세요. 혼 나간 짓 아닙니까? 국민 대표를 자처하면서 '중국 글자'라니요?”
좌중의 K교수가 “국회의장한테 보내지 그러셨어요?” 하고 거든다. “서한 보냈지요. 강창희 의장 앞으로. 답장도 왔어요. 비서실인가 국회의장실을 통해….” Y교수가 이때 앞질러간다. “고견에 감사하고 전향적으로 검토해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겠죠?” 노교수도 긍정했다.
이런 자리에서 국회 문양 형태는 밥맛 돋우는 소재는 못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병석 국회부의장에게 “한글화가 좋지요?”라며 관심 표했다는 금배지 얘기도 벌써 나왔다. 박 부의장은 17대와 19대 국회에서 무궁화 마크 안의 '國'을 '국'으로 하자는 규칙 개정안을 내놓았다. 박영선 의원 등은 전에 '국회' 두 글자를 제안했다. '국'이 물구나무서면 '논'이라는 해석이 곁들여졌다.
“국회의원들이 논다”는 비아냥거림이 싫었던 모양이다. 중심부 '或'이 '의혹'으로 오독된다는 설명은 더 재미있다. 5대(1960~1961, 참의원)<사진 왼쪽>와 8대 국회(1971~1972)에서 '국'으로 바뀐 짧은 역사가 있었다.<사진 오른쪽> 9대 국회(1973)에서 한자로 되돌리는 변덕을 부릴 때도 '국'이 '논'으로 보인다는 이상야릇한 논리가 적용됐다.
이후 40년이 흐르도록 한글 대 한자 타령은 되풀이된다. 어느 상징을 달 때나 '말하는 곳'인 국회는 늘 시끄러웠다. 의회의 다른 표현인 parliament(프랑스어 parler에서 나옴)는 '말하다'의 뜻을 내포한다. 지방의원 배지의 '議(의)'도 옳은(義) 말(言) 하라는 얘기 아닌가. 정치는 말을 먹고산다.
그런데 참조할 것은 國이 □나 或에서 온 글자라는 사실이다. □는 강역(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이다. 戈(창)와 □가 결합한 '或 자는 邦(나라)의 뜻이다'가 설문해자 풀이다. 국회의원들이 까무러칠지 모르지만 '國=或'이었다. 1861년 중국에서 congress를 번역한 '國會'가 일본에 흘러들었고 우리가 받아들였다. 개헌 기회가 있으면 '의회'(대한민국의회)나 '민회'(대한민국민회)로의 교체도 고려할 대상이다.
우선은 금배지만이라도 민생 위해 밥값 하라는 의무감을 실어 '민'으로 해도 좋다고 본다. 독일 입법학자 올리 카르펜 교수도 우리 국회에서 “대중을 뜻하는 '民'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조언한 적이 있다. 살펴보면 3대 국회 시절 태극무늬에 '민' 자를 넣기도 했다. 금배지(99% 순은에 금도금)는 9번 정도 바뀌었다. 아우를 것은 골룸도 욕심낼 절대 배지를 봉사의 상징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國으로 쓰고 왜 혹시의 혹, 미혹의 혹, 갈팡질팡의 혹으로 읽는지, 반성이 먼저다. 행정부, 사법부는 아무 탈 없이 '정부', '법원'으로 쓴다.
“당분간 '或'도 괜찮겠어요. '혹시' 언제 국회가 좋아지나, 기대가 가능하니까요. 하하.” R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금배지의 한자 고집은 서양의 라틴어 혼용과 같은 권위주의”로 동일시한다. 귀갓길에 아까 그 노교수의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력이 깨알같이 적힌 명함은 한자(漢字)밭이다. 전화번호 빼고는 전부가 그렇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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