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혹시 노는 국회의원 없지요?

  • 오피니언
  • 문화칼럼

[문화토크]혹시 노는 국회의원 없지요?

최충식의 문화토크

  • 승인 2013-07-21 11:12
  • 신문게재 2013-07-22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國'(나라 국)으로 쓰고 '或'(혹시 혹)으로 읽고,
'국'으로 쓰고 '논다'의 '논'으로 읽고. 왜 그럴까?


어느 모임 뒤풀이 자리. 노교수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섞여 있었다.

“아니, 국회의원들이 '나라 국(國)' 자 보람(배지)을 버젓이 달고 다니는 꼴 보세요. 혼 나간 짓 아닙니까? 국민 대표를 자처하면서 '중국 글자'라니요?”

좌중의 K교수가 “국회의장한테 보내지 그러셨어요?” 하고 거든다. “서한 보냈지요. 강창희 의장 앞으로. 답장도 왔어요. 비서실인가 국회의장실을 통해….” Y교수가 이때 앞질러간다. “고견에 감사하고 전향적으로 검토해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겠죠?” 노교수도 긍정했다.

이런 자리에서 국회 문양 형태는 밥맛 돋우는 소재는 못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병석 국회부의장에게 “한글화가 좋지요?”라며 관심 표했다는 금배지 얘기도 벌써 나왔다. 박 부의장은 17대와 19대 국회에서 무궁화 마크 안의 '國'을 '국'으로 하자는 규칙 개정안을 내놓았다. 박영선 의원 등은 전에 '국회' 두 글자를 제안했다. '국'이 물구나무서면 '논'이라는 해석이 곁들여졌다.

“국회의원들이 논다”는 비아냥거림이 싫었던 모양이다. 중심부 '或'이 '의혹'으로 오독된다는 설명은 더 재미있다. 5대(1960~1961, 참의원)<사진 왼쪽>와 8대 국회(1971~1972)에서 '국'으로 바뀐 짧은 역사가 있었다.<사진 오른쪽> 9대 국회(1973)에서 한자로 되돌리는 변덕을 부릴 때도 '국'이 '논'으로 보인다는 이상야릇한 논리가 적용됐다.

이후 40년이 흐르도록 한글 대 한자 타령은 되풀이된다. 어느 상징을 달 때나 '말하는 곳'인 국회는 늘 시끄러웠다. 의회의 다른 표현인 parliament(프랑스어 parler에서 나옴)는 '말하다'의 뜻을 내포한다. 지방의원 배지의 '議(의)'도 옳은(義) 말(言) 하라는 얘기 아닌가. 정치는 말을 먹고산다.

그런데 참조할 것은 國이 □나 或에서 온 글자라는 사실이다. □는 강역(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이다. 戈(창)와 □가 결합한 '或 자는 邦(나라)의 뜻이다'가 설문해자 풀이다. 국회의원들이 까무러칠지 모르지만 '國=或'이었다. 1861년 중국에서 congress를 번역한 '國會'가 일본에 흘러들었고 우리가 받아들였다. 개헌 기회가 있으면 '의회'(대한민국의회)나 '민회'(대한민국민회)로의 교체도 고려할 대상이다.

우선은 금배지만이라도 민생 위해 밥값 하라는 의무감을 실어 '민'으로 해도 좋다고 본다. 독일 입법학자 올리 카르펜 교수도 우리 국회에서 “대중을 뜻하는 '民'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조언한 적이 있다. 살펴보면 3대 국회 시절 태극무늬에 '민' 자를 넣기도 했다. 금배지(99% 순은에 금도금)는 9번 정도 바뀌었다. 아우를 것은 골룸도 욕심낼 절대 배지를 봉사의 상징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國으로 쓰고 왜 혹시의 혹, 미혹의 혹, 갈팡질팡의 혹으로 읽는지, 반성이 먼저다. 행정부, 사법부는 아무 탈 없이 '정부', '법원'으로 쓴다.

“당분간 '或'도 괜찮겠어요. '혹시' 언제 국회가 좋아지나, 기대가 가능하니까요. 하하.” R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금배지의 한자 고집은 서양의 라틴어 혼용과 같은 권위주의”로 동일시한다. 귀갓길에 아까 그 노교수의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력이 깨알같이 적힌 명함은 한자(漢字)밭이다. 전화번호 빼고는 전부가 그렇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