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유적지들 |
[짧은 터키여행… 더 짧은 생각들] 한국편집기자협회 데스크 세미나를 다녀와서
1.형제의 나라 ‘터키’는 왜 형제의 나라일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본고장으로 비잔틴 제국의 운명과 술탄의 영광이 남아있는 터키.
처음 “터키에 간다”라고 전했을때 대다수 지인들은 “형제의 나라에 가는구나”라고 입을 모았다.
▲2002 월드컵 터키국기/자료제공=연합뉴스 DB |
비록 3-2로 터키가 승리했지만 외신들은 이날의 경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터키는 왜 형제의 나라일까?
#1. 역사에서 바라본 돌궐=투르크&고구려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 라고 일컫는다.
일각서는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다고 말한다. 원래 나라와 나라 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 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 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2. 역사에서 바라본 돌궐=/=투르크&고구려
돌궐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돌궐은 동서로 분리되는데 고구려와 직접적으로 접촉한 세력은 동돌궐이며, 멸망후 서쪽으로 이주해간 투르크족은 서돌궐에 속한다. 즉, 고구려와의 접촉은 동돌궐과 이후의 후돌궐을 지칭한다.
오스만을 세운 세력이나 현재 터키를 세운 투르크계 오우즈족이 고구려와 관계를 맺었을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심지어 오우즈족에 속했던 일부 부족은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당나라와 동맹을 맺은 세력들로 오히려 고구려의 적이었던 셈이다.
#3. 자발적 한국전쟁 참전국 터키
한국전쟁 당시 터키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1만5000명의 병사들을 파견했고 3500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터키의 종교가 이슬람에 기반한다는 점과 파견 병사들이 거의 다 자원병이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터키인이 자신의 성을 코렐리(한국인)라고 바꿨다고 전해지는데, 자신이 그리고 형제가 피를 흘린땅을 ‘조국으로 생각한다’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번째 설정이 가장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2002년 월드컵 터키전 이후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인들을 언급하며 ‘형제의 나라’라고 입을 모았으니 말이다.
#4. 경제적 특혜를 위한 참전국
한국전 참전국가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그리스, 터키, 태국, 필리핀, 남아공,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호주, 뉴질랜드로 총 16개국의 군사지원국과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의료지원국 5곳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형제의 나라’라 불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 당시 소련과 중공군을 상대해야 하는 미국은 혼자로는 벅찼기 때문에 파병국들에 경제적 특혜를 주고 파병을 요청했다. 국가 이익적 측면으로 볼때 터키, 콜롬비아, 남아공은 결국, 미국에게 경제적인 특혜를 받고 800~7000명의 전투병들들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제상황은 너무나도 어려웠으므로 미국의 요청은 큰 유혹거리였을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전투병을 모집에 젊은이들이 떼로 모여 서로 한국으로 가겠다고 아웅다웅 했다고 하는데. 당시 경쟁률이 13.4-1이 이었다고도 전한다.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그 무엇도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형제의 나라’인지 ‘형제라고 알려진 나라’인지 ‘형제같은 나라’인지 알쏭달쏭한 의문을 품은채 장장 10여시간의 비행길에 올랐다.
●사전적으로 들여다본 ‘터키’
▲터키 지도 |
터키는 서쪽으로는 리비아, 알제리로부터 동쪽은 이란, 아프카니스탄, 남쪽은 이집트, 수단, 아라비아반도까지 걸치는 광의의 중동지역에 있다. 역사적으로도 동서문명의 십자로이며,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융합된 신비한 나라다.
최고의 인류가 살았던 유적시대로부터 히타이트, 이오니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투르크, 터키공화국 등 많은 국가와 문화, 문명이 교체된 다중층의 혼합 모자이크 국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기후까지 지중해성, 대륙성, 아시아 지중해성, 아대륙성, 사막성 등의 기후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종교의 혼합, 동서문화의 혼합은 여행자들에게 무수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오리엔트문명이 이곳에서 잉태했고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인류역사를 엮어 나갔던 수많은 문명들이 이곳에서 명멸해 갔기 때문이다.
1999년 8월의 대지진은 가뜩이나 어려운 터키경제를 다시 10년 이전으로 후퇴시켰다. 약 3만5000명 가까운 인원이 매몰돼 죽고 이즈미트, 골주크 등 몇 개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터키굴곡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무너지 건물속에서 새로운 터키를 건설해 나가고 있다.
고미선 기자 misuny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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