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국 서예가·전 대전시의회 의장 |
우리말에 (특히 토속어) 예쁜 표현도 많지만 '꽃샘'이란 말만큼 예쁜 말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이는 곧 꽃이 피는 것을 시암(시샘)한다는 뜻인데 왜 하필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이 피는 것을 시암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꽃이 향기롭고 아름답지 않다면 굳이 시샘할 이유가 없으리라는 추측을 대뜸할 수 있고, 그렇게 본다면 대자연 속에서 시샘을 받고 피는 것이 꽃 말고는 달리 잘 생각이 안 나니, 꽃이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인가도 새삼 느낄 수 있다.
우리말 사전에 '시암'이란 뜻은 남의 일이나 물건을 탐내거나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이를 미워함이라고 적어 놓은 것을 봐도 대체로 '시암'은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 너무 풍요로운 것들을 그만 못한 축에서 시기나 질투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을 시암해서 꽃 샘 추위가 유난을 떤다는 사실은 봄과 꽃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반증(反證)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여름시샘 이니 가을시샘이란 말은 들어 본 사실이 없으니 봄이야말로 계절의 여왕(女王)이요, 그 봄에 피는 꽃이야 봄을 가장 봄답게 장식하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음을 이 낱말로만 가지고도 유추할 수가 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꽃샘' 정도가 고작인 우리말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사로 넘어오면 제법 많은 '시암'이나 '시샘'이 있는 것도 묵과할 수 없다. 가령 '시누이 시샘', '홀어머니 시샘' 같은 말도 있고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표현도 결국은 풍요로운 사촌을 놓고 가난한 사촌이 시샘한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자신이 못 가진 것을 부러워 하다못해 미워하고 감정이 우리 민족에게는 잠재해 있는 듯하다.
필자는 자체에 우리도 이제는 꽃샘추위 정도는 자연의 섭리이니까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겠지만 인간사 속에서의 시샘이나 질투는 가급적 더 이상 지속시키지 말자는 제언을 하고 싶다.
물론 시샘을 하다보면 나도 남처럼 잘 살고 예뻐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민족의 감정 중에서 시기, 질투, 원망, 탐심 등은 이제 새 시대의 진군(進運)과 더불어 버리고 싶은 유산이기 때문이다. 꽃샘바람이 분다고 꽃이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아니듯이 남을 미워하거나 질투한다고 해서 그 남이 크게 달라지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제 남을 이해하고 칭찬하고 존중해주는 기풍이 아쉽고 또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신도 남 못지않게 노력하고 분발해서 남보다 더 낫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을 시샘하는 부정적(否定的)인 풍토로부터 벗어나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긍정적인 삶의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냉철한 자성과 아울러 정치·경제·사회· 문화· 교육· 체육 등 그 동안 이루지 못한 모든 질서와 현안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국민정신의 새로운 정립과 함께 국민행복시대를 힘차게 열어가야 할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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