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당선인, 잊은 것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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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택]당선인, 잊은 것 없습니까?

[중도시평]안순택 논설위원

  • 승인 2013-01-29 14:31
  • 신문게재 2013-01-30 20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다음 달에도 춥겠다는 예보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고야 만다. 닷새 뒤면 입춘이다. 봄이 오는 걸 알기에 추위도 견딜만하다. 자연의 약속은 어김없지만 사람의 약속은 속절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 구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약속대로라면 새 정부 새 판 짜기의 핵심 과제는 지방분권이어야 맞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리는 밑그림에는 지방분권이 안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지방분권을 숱하게 약속했다. 모든 지역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국민통합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정운영을 바꾸겠다고 했다. 박 당선인이 누군가. 누구보다 신뢰와 약속을 중시하는 정치인 아닌가.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지방에 봄이 오겠구나 믿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은 실망스럽다. 정부조직개편안에도 청와대조직개편안에도 분권을 추진하는 기구는 없다. 기획재정부가 부총리 급으로 격상됐다. 분권의 기둥줄기 중 하나인 재정분권을 완강히 반대해온 부처다. 그러잖아도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있는 기재부의 위상이 더 강화됐으니 재정분권 얘기는 꺼내기조차 힘들 판이다.

지방자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안전'에 방점이 찍혔다. 집밖 나가기가 겁나는 세상이니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거야 나무랄 데 없다. '자치'를 빼버린 이명박 정부에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지방이 아예 안중에도 없어질까 걱정되는 거다. 상황이 이러니 '새 정부에서 지방분권은 물 건너갔다'는 한탄이 나오게도 됐다.

당선인의 공약이 선거용 '말잔치'였는지, 인수위가 당선인의 공약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인수위 활동은 향후 5년간 국정운영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지방분권 추진이 인수위에서부터 뒷전으로 밀리면 지방의 봄은 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방은 여전히 찬밥 신세가 되고 지방대학은 날개 없이 추락해 갈 것이다.

당선인이나 인수위나 우리 사회의 난제들이 양극화에서 비롯됨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국민대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을 보면 알고 있다. 그렇다면 빈과 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현격한 차이 못지않게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극과 극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러기에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10대 핵심 공약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지역불균형은 도를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신체에서 머리가 반을 차지하는 기형의 모습이다.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 낙후는 종당에 수도권의 부담으로 이어져 국가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마치 '갑을(甲乙)관계' 같은 중앙과 지방정부의 불균형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자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오죽하면 '2할 자치' '무늬만 자치'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지방의 고통을 안다면 지금부터라도 분권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인수위 활동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인수위가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다. 두루뭉수리 넘어간다면 당선인의 상징인 신뢰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조직개편안에서 드러난 대로 중앙집권적 기조를 새 정부도 그대로 유지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활짝 열어젖힐 수 없다. 정부 부처를 늘리고 부처 간 기능을 조정한다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겠는가. 국민의 삶의 질과 대학의 경쟁력을 부처 이름을 바꾼다고 확보할 수 있겠는가.

시대의 흐름은 중앙의 결정권을 지역으로 분산시켜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추세다. 이를 통해 복지, 고용,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 미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정치ㆍ경제 선진국들은 이미 자치와 분권 확대로 국가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주시하고 분권을 실천하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지방분권 법제화가 급선무다.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하고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지방정부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고 실질적 지방분권이 가능해진다.

지난주부터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분권 단체들과 자치단체장들이 잇달아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지방은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인수위가 이 요구를 듣고 있다면 응당 응해야 한다.

분권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와 개혁의 새 시대를 어찌 열겠으며, 균형발전 없이 국민대통합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실종된 분권 공약을 되살리고 국정의 핵심 과제로 삼으려면 당선인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개혁은 정책 추진력이 강한 임기 초부터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왕 지킬 약속 굳이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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