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시만 해도 썰매는 누구나 만들어서 탈 수 있었지만 스케이트는 매우 귀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스케이트 날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스케이트 날이 붙어있는 구두 또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구두가 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구두 밑창에 스케이트 날을 붙여서 신발처럼 신고 얼음을 지치는 일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이러한 구두스케이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스케이트였다. 그러므로 대장간에서 두드려 만든 스케이트가 있었다. 대장간에서 만든 스케이트는 쇠를 두드려 만든 스케이트 날 양쪽에 쇠스랑처럼 가지쇠를 붙이고 가지쇠 끝에 고무줄을 걸 수 있도록 갈고리를 만들었다. 이 대장간에서 만든 스케이트는 양쪽 가지쇠 사이에 신발을 신은 채 발을 올려놓고 고무줄로 쇠갈고리 사이를 엇갈리게 묶어서 고정시켰다. 그런데 그 크기가 일정하여 발을 스케이트에 맞도록 고정 시켜야 했다. 발이 크면 양쪽 가지쇠에 꼭 끼게 되도록 고무줄로 단단히 묶을 때 튀어나온 발등을 꼭 조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몹시 아프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스케이트를 타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발에서 밀려오는 아픔은 아픈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반대로 발이 작은 아이들은 스케이트가 움직이지 않도록 가지고 있던 장갑이나 양말, 헝겊 등을 여러 겹으로 끼워 넣고 고무줄로 단단히 매고 얼음을 지쳤다.
구두스케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대장간스케이트 조차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한 마을에 한 두 개가 있으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스케이트에 호기심이 많았던 마을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스케이트를 가진 아이가 제시하는 조건들을 들어주면서 잠시 얻어 타곤 하였다. 그렇다고 스케이트가 썰매처럼 자유자재로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겨우 얻어 타는 동안 균형이 잡히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다보면 친구와 정한 시간이 다 흘러가곤 하였다. 그 잠시 동안이라도 거기서 얻는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길 데가 없었다. 이러한 스케이트는 우리나라에 19세기후반에 들어와서 20세기 초에 처음타기 시작했다는데 100여년 만에 세계를 제패하는 스케이트 강국이 되었다. 그 바탕에는 바로 대장간 스케이트를 지치던 열정이 녹아있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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