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길거리에서 드럼통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구마구이통을 가지고 구우면서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광경은 도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한겨울 부엌에서 아궁이 짚불이나 장작불에 고구마를 묻어 굽거나 화로에 짚불이나 장작불을 꼭꼭 눌러 담아 놓고 그곳에 고구마를 묻어 구워먹었다. 아궁이나 화롯불에 구운 군고구마의 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었다. 거기에 잘 익은 동치미와 동치미국물을 같이 하면 한겨울의 진미 그 자체였다.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구울 때는 조심해서 구워야 했다. 고구마를 묻어 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꺼내보면 너무 타서 못 먹고 아까운 고구마만 태워버리는 일도 간혹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하고, 감자를 보리감자라고도 했는데, 감자를 고구마처럼 구워먹기도 하였다. 군고구마를 먹다보면 누구나 고구마검정을 손가락이나 손바닥, 손등은 물론이고 입술 주변이나 볼, 코 등 얼굴의 주요 부분이 마치 피에로처럼 변해 버리고 서로를 가리키며 박장대소를 하곤 하였다. 고구마 검정을 서로의 얼굴에 더 묻히려고 애쓰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구마를 위하여 집집마다 고구마 통가리(볏짚 등으로 엮어 둘러치고 그 안에 곡식이나 먹을거리를 채워 넣어 놓는 더미)를 만들어 저장하였다. 땅을 파고 저장하기도 하였으나 윗방의 윗목 구석에 고구마 통가리를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고구마를 꺼내 먹곤 하였다. 한 때 극성했던 쥐도 고구마를 쏠아 먹기까지 하였다. 군고구마뿐만 아니라 날고구마를 깎아 먹던 기억 또한 새롭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황식품이라 하여 배고픔을 이기려고 밥 대신 먹었던 고구마가 요즈음은 건강식품이라 하여 고구마가 매우 귀해졌다하니 세월의 변화를 느낄 만하다. 고구마뿐만 아니라 고구마줄기도 잘 다듬어서 나물로 먹었으며 고구마 잎은 토끼먹이로 그만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구마를 구워먹으면서 옛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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