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길호 ETRI 홍보팀장 |
ETRI는 지난 35년 연구원 역사의 연구성과 1번으로 손 꼽는 것이 바로, TDX(Time Division Exchange), 전전자 교환기 개발이다.
당시 전화는 수동식으로 전화기 옆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자석 발전기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계식 교환기로는 늘어만 가는 전화가입 수요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전화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1980년에 들어서자 백색전화 한 대 가격이 당시 작은 집 한 채에 해당하는 20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전화 적체와 관련되어 문제는 바로 '교환기' 였다. 이것으로 전화 적체를 해결할 대응방안이 제시된 것이다. 이미 세계의 유수 정보통신 강국들은 전자식 교환기 개발을 통해 상용화까지 이룬 터 였다.
따라서 1981년, 한국은 드디어 전자교환기 개발을 최종 확정하고 연구에 들어간다. 이름하여, '시분할 전전자 교환기(TDX)개발 사업'이었던 것이다. 연구개발 기간은 5년이었으며 연구비도 240억원이라는 우리나라 사상 초유의 대형 프로젝트 였다. 거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가 나오기 까지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뒤따라야만 했었다. 개발 계획이 나온 이후에도 이러한 내용에 대한 수많은 우려와 불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연구개발을 최종승인하기 까지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바로,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서약서를 연구원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름하여 'TDX 혈서'다.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 전자교환기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 였다. 본 내용은 ETRI가 당시 주무부처였던 체신부에 제출한 서약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소장은 물론, 개발단장, 부서장과 연구원 들은 한 장의 서약서에 서명을 하며 혈서를 쓰듯 비장한 심정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연구에 몰두한 결과, 순수 국산 기술로 우리의 TDX를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발전의 운명이 달려있던 TDX 개발, 그 뒤에는 이러한 '혈서'를 쓸 정도의 굳은 각오와 비장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1982년 우리는 세계에서 10번째로 한국형 전전자교환기(Digital Electronic Switching System)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TDX-1X(최초의 국산교환기)를 비롯, -1A(농어촌용), -1B(중소도시형), -10(대용량교환기), -10A(ISDN, PSTN 겸용교환기) 등의 시리즈로 개발이 성공했다. 용량이 10배 증가된 대도시형 'TDX-10'을 개발한 일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상용화 4년 만에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는 전 세계에서 드물게 이사를 가더라도 유선전화기를 신청하면 당일에 신청한 전화가 나오는 나라가 되었다.
ETRI가 그동안 일군 연구 성과물들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중 TDX가 차지하는 부분은 약 20조 5200억원으로 전체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아울러, 본 사업의 성공은 대한민국과 ETRI가 향후 정보기술(IT) 자립에 자신감을 갖게 된 큰 동인이 되어 주기도 했다.
정길호·ETRI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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