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길호·ETRI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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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ETRI의 전신)와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컴퓨터가 패킷교환(TCP/IP)방식으로 처음 연결된 것이다. 양 기관에 있던 중형컴퓨터에 IP주소를 할당받아 시험한 최초의 도전이었다. 당시 전송속도는 고작 1.2Kbps(1200bps)급 이었다. 현재 일반 가정이나 회사의 보편적인 속도인 100Mbps와 비교해 보면 10만분의 1 수준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수준으론 대단한 셈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최초였던 미국은 13년이나 빠른 1969년 9월, 알파넷(ARPA Net)을 통해 인터넷 연결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개발을 총괄 지휘했던 장본인은 바로,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길남 박사다. 올해 70세로 미국 UCLA대 컴퓨터공학 박사학위 취득후 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해외 과학자 유치사업에 선정,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시스템 개발부장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다.
당시 전 박사가 사용했던 1.2Kbps KT전용회선은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고 불렸다. 최초 인터넷 연결이후 대덕시대에 접어든 ETRI는 데이터통신연구실, ISDN 연구부, 컴퓨터연구단을 조직개편으로 편제하고 본격적인 컴퓨터, HW, SW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이를통해 한국에서는 1984년 상용 전자우편 서비스가 시작됐고 1985년에 드디어 PC통신 서비스가 시작됐다.
10여년 뒤인 1994년이 돼서야 한국통신(KT), 데이콤에 의해 일반인도 인터넷을 직접 사용케 되는 상용서비스가 이뤄졌다. 또 1998년에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자 마자 2002년에 초고속인터넷 가구 1000만시대를 열게 된다. 한국에서의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눈부신 발전으로 역사와 궤를 함께하게 된다.
이후 2004년, 세계 최초로 와이브로(WiBro)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3G(HSDPA) 보다 7배나 빠른 통신기술인 3GPP LTE기술을 2008년에 개발함으로써 인터넷 강국으로 발돋움 하게 된다.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인 LTE-어드밴스드도 201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명실상부한 인터넷 최강국이 되었다.
세계를 여행하며 인터넷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이 인터넷 연결이 도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느리고 빠른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데이터량에 따라 요금이 엄청 비싸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한번 사용하려면 눈치보고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만족할 수 는 없는 일. ETRI는 스마트 코리아 실현을 위한 '기가코리아(Giga KOREA)'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N), 세계 최고의 단말기(T), 경쟁력 있는 플랫폼(P)과 콘텐츠(C)를 키우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10년 후엔 1Gbps(초당 1기가비트 전송)로 넘어가고 단말기 플랫폼 콘텐츠도 기가급으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인 것이다.
'빨리 빨리'는 이젠 전 세계적으로 관용어구가 다 되었다. 빠른 것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세계 시장에서 빠른 인터넷과 빠른 IT로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정길호·ETRI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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