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정치부 부장 |
일부 출연연은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국가연구개발 절반을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담당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출연연의 현 주소다.
언제 잘리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 앞에 10, 20년 뒤 연구개발을 생각할 겨를은 없다.
출연연의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국정감사에 지적되고 현안과제로 거론됐지만 그때 뿐이다.
1996년 연구효율성을 강조하며, 연구비 지원에 경쟁 개념의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Project Based System)'로 인해 연구책임자가 과제를 따내지 못하면 팀원의 월급을 줄 수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구조화됐다. '이거 돈이 되는 연구야'라는 말처럼 돈이 우선시 됐고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중은 해를 거듭할 수록 높아지고 고착화됐다.
출연연의 비정규직 문제를 예산과 함께 비교해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출연연의 예산은 이명박 정부 출범한 2008년 1조여 원에서 2012년 1조 8000여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정규직은 2008년 1만 116명에서 2011년 10만 423명으로 307명 증가에 그쳤다. 예산은 증가했지만, 정규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연연마다 대형연구와 새로운 분야 연구와 미션이 주어지면서 예산은 늘었지만, 정원을 동결한 정부의 방침에, 출연연들은 과제별로 1~3년짜리 비정규직 연구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연구원'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 비정규직 연구원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증가는 그동안 출연연들이 쌓아온 연구개발능력을 일거에 무너뜨리려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자력연구원처럼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고령화된 출연연에는 심각한 위기다.
원자력연은 지난 50년간 사명감 하나로 경수로ㆍ중수로 핵연료개발, 한국표준형 원전개발,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자력 건설, 세계 최초 일체형 원자로 스마트(SMART)표준설계 인가 획득뿐 아니라 요르단 연구로 및 UAE 원전 수출에 성공하고 선진국이 독점하던 세계 원자력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연구인력의 노령화(평균 47세)와 더불어 앞으로 10년간 대규모 퇴직(현원의 41%, 503명)이 예정돼 지난 50년간 축적해온 원자력 기술능력의 단절이 우려되고 있다.
예산만 증가하고 정원은 동결되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출연연의 10년 후의 모습은 밝지 않을 것이다.
A 박사는 “고급연구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버려두며 차세대 국가연구개발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며 출연연에 인력운용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B박사도 “과제가 끝나면 연구소를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 연구원들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라며 정원 확대와 총연구비 가운데 인건비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3년마다 바뀌는 기관장은 정부지침과 규정의 틀 속에서 정원을 증원하거나 연구소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왜곡된 인력운용뿐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의 정체성과 미션이 흔들린다는 점도 출연연 패러독스 중 하나다.
출연연의 정체성과 미션은 시대적 소임이라는 명제 아래 때론 연구개발사업화를 비롯, 중소기업과 벤처활성화, 청년실업해소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요즘에서 과학기부와 과학대중화가 강조되면서 '출연연구기관'인지 '출연연구교육기관'인지 헷갈린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출연연의 정체성과 미션은 외면된 채 주객이 전도된 역설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연구자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출연연에 혼란을 가져오고 국가 경쟁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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