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는 중성자를 이용한 기초과학 연구와 첨단 신소재 개발, 핵연료 및 원자로 재료 개발, 의료용 및 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이용연구, 중성자 도핑을 통한 고품질 반도체 생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
지난달 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마지막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날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핵물질 감축'을 위해 우리나라와 미국, 벨기에, 프랑스는 고농축우라늄 연료를 저농축 우라늄 연료로 전환하는 공동 협력사업을 발표했다.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지 않고 저농축우라늄으로 저농축 핵연료 U-Mo(몰리브덴 합금)를 만들 수 있는 핵연료 제조 원천기술 보유국은 현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국내에서 개발된 핵연료 원천 제조 기술로 제조된 저농축 우라늄이 앞으로 미국, 프랑스 등 원자력 강국 뿐만 아니라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세계 연구용 원자로에 사용될 예정이어서 원자력분야에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전기를 마련했다.
원자력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59년 원자력 기술 자립을 통한 에너지 자립 목표아래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표준형원전 원자로 계통설계, 중수로 핵연료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다목적 연구원 원자로 하나로 자력 설계 건조, 방사성 동위원소 신약개발, 사상 첫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 등 이정표를 남기며, 과학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괄목할 만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과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핵확산정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미래 원자력 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 이용시 확고한 안전성 확보가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1992년 원자력안전에 관한 연구에 본격 착수한 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 안전과 관련된 세계적인 성과물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원자력안전연구는 다른분야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까지는 원자력 선진국들의 뒤를 쫓는 입장이었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핵심실험설비 구축과 운영으로 2000년대 들어, 세계수준에 진입했다. 이때문에 원자력 선진국과 신규도입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원자력연구원 방문을 제1순위로 꼽고 있다.
▲열수력 현상을 재현할 수 있는 아틀라스 실험장치를 성공적으로 운영, 열수력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최적의 안전해석 전산코드를 개발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높이 30m에 달하는 거대한 아틀라스는 1260여 개의 계측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정밀한 실험장비이다.
아틀라스는 우라늄 핵연료 대신 전기를 이용해 압력(최대 185기압)과 온도(최대 370℃)를 원전 내부와 똑같은 조건으로 구현, 냉각수 배관 파손, 증기관 파손, 증기발생기 튜브 파손 등 발생가능한 가상 사고를 모의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다양한 실증실험을 통해 가압경수로인 APR1400의 안전성을 확보, 2013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중인 신고리 3, 4호기 건설과 아랍에미리트 수출에 기여했다.
아틀라스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우리나라 원전이 다양한 안전계통을 갖추고 불시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아틀라스는 원자력 연구원의 안전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로이, 중대사고 방지의 첨병=원자력 발전소의 중대사고는 설계시 고려했던 사고가 아닌 원자로노심이 녹는 사고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이 극단적인 자연재해를 비롯, 테러에 의한 사고로 연구핵심은 용융된 원자로물질을 안전하게 냉각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중대사고 시 원자로 우선 용기를 보호해야 하지만 원자로 용기가 파손되면, 방출된 고온의 원자로 물질이 주변의 물과 반응, 증기폭발(steam explosion)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증기폭발 현상은 고온의 용융물이 물과 반응,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원전에서 증기폭발이 발생하면 격납건물의 손상으로 인해 다량의 핵분열 생성물이 대기로 방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자로 물질과 물과의 증기폭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실제 원자로 물질을 이용한 증기 폭발 실험 장치인 TROI(Test for Real cOrium Interaction with water)를 통해 실제 핵연료 물질에서도 증기 폭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확인,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 결과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 프랑스의 CEA 국립 연구소와 국제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간 260만 유로의 연구비가 투입되는 이 연구에는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을 포함, 11개국 16개 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전원이 끊겨도 안전한 원전=원자력연구원은 아틀라스, 트로이 외에도 원자력발전소의 전원이 끊기더라도 자동으로 냉각수를 공급해 원전의 안전을 확보하는 피동보조급수장치(이하 PAFS)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PAFS가 원전에 설치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처럼 발전소 내외부에서 전원이 끊기더라도 원전과 핵연료를 냉각할 수 있어 원자로 폭발 같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 확보가 각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만큼 원자력연구원은 노심용융, 증기폭발, 방사성 물질 대량 누출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안전기술 개발에 밤낮없이 매달려 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보듯 원전 비상사태 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원자로와 핵연료의 안전한 냉각이다. 열이 식지 않으면 노심용융이 발생,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원전에 설치된 발전소 내 자체발전, 인근 발전소에서 끌어오는 전원, 디젤발전기, 비상배터리, 배터리 차량 등 5단계 전원공급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것이 PAFS다.
PAFS는 원전에 공급되는 전원이 차단돼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권은남기자 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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