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처음 울산의 현대중공업을 찾았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배를 만드는 대형 도크의 위엄부터… 바퀴가 20개 달린 대형 트럭 두 대가 이끄는 거대한 선박 앞에 기가 죽었던 게 사실입니다.”
“대전에서 울산까지 5시간 동안 달려가 찾았지만, IT 기술을 조선산업에 적용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부터 현장 반응이 시큰둥해 고생 많았습니다. 내려간 출장지 차내에서 밤을 지새운 게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랍니다.”
ETRI 한 연구원의 말이다. SAN(Ship Area Network)기술, 즉 IT 기술을 우리의 전통산업인 조선산업에 적용하는 선박통신기술이 요즘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떻게 배를 만드는데 IT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까? 정답은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적용하는 것이다.
SAN기술은 선박 내의 모든 기능들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선박통합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SAN기술로 선박 장치의 정보를 수집하고, 위성을 통해 즉시 육상에서 그 정보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바로 'SAN기반 원격 선박 유지보수' 기술이다.
기존에는 선박장치의 상태를 장치의 바로 앞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선박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의 경우, 엔진 바로 옆에 있는 엔진 룸에서 엔진의 모든 상태를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엔진 룸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던 정보를 이제는 육상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웹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 초기에는 IT 하는 사람들과 선박 하는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분명 한국어를 쓰고 있기는 한데,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요. 결국, 융합의 본질은 이질적인 기술의 융합보다, 사람 간의 융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여했던 ETRI 연구원들의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조선기술이 새로운 무기인 'IT'기술로 스마트하게 옷을 갈아입고 재탄생하게 되자 2009년 이후 중국에 밀렸던 세계 선박수주량도 되찾아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박수출 1위 국을 탈환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해외 유수의 선박제조회사로부터 수주 받은 선박수만 110여 척에 달한다 하니, SAN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 및 세계무역 순위 9위 달성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게 분명하다.
이제는 SAN기술의 덕택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배가 고장이 나도 육지의 프로그래머가 직접 고칠 수 있어, 굳이 헬리콥터를 타고 배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게 됐다. 또 선주는 바다에서 해적이 나타나 배를 점령하더라도 육지에서 원격에서 버튼 하나를 이용해 배의 엔진을 꺼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신기한 IT 기술의 덕택이다.
정길호ㆍ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홍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