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당에 이번 총선은 지난해 9월 국민중심연합과 공식적으로 통합을 선언한 심대평 대표 체제에서 치른 첫 총선으로 출발부터 많은 난관에 부닥쳤다. 이로인해 정치권에서는 '도로 선진당', '제2의 자민련'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현역의원인 이용희, 이상민, 김창수 의원이 잇달아 선진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선진당은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심대평 대표와 이회창 전 대표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19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비례대표 순번을 두고 갈등이 불거져 이 전 대표가 한때 칩거에 들어간 후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힘든 싸움이었고, 이미 19대 총선의 초라한 성적은 예견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진당의 모태는 자유민주연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충청권을 기반으로 김종필 전 총재가 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 현역의원 9명을 데리고 자민련을 창당한다. JP가 김영삼 전 대통령 및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3김(三金)시대'를 주름잡을 수 있게 된 힘이 자민련으로부터 시작된다. 자민련은 창당 3개월만에 제1회 지방선거에서 충청권(대전ㆍ충남ㆍ충북)을 석권한 것 뿐만 아니라 강원지사까지 무려 4개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이후 15대 총선에선 '충청도 핫바지론'을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며 충청도와 전국의 보수표를 결집, 50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자민련은 DJP(DJ+JP) 후보 단일화를 통해 공동 집권당이 됐고 JP는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그 뒤 DJ의 내각제 약속 파기로 DJP 공동 정권이 붕괴되면서 자민련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자민련은 제17대 총선에서 지역구 4석에 정당 지지율 2.7%에 그치며 비례대표 1번이었던 JP가 낙선하게 된다. 10선을 앞두고 있던 JP는 그렇게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자민련은 한나라당과 국민중심당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2008년 2월 18대 총선을 2개월 남겨두고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비례대표까지 18석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창조한국당과 당대당 통합을 통해 교섭단체를 구성한 후 국회에서 제3당의 역할을 하지만 심대평 대표의 탈당으로 교섭단체가 붕괴되면서 '도로 자민련'이 되는 것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선진당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영ㆍ호남 지역주의 패권을 해소하는 제3정치세력의 구심점을 기치로 내걸고 총선에 나섰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한편, 자유선진당은 지역구에서 아산 이명수, 서산태안 성완종, 논산금산계룡 이인제 의원, 비례대표 2명, 총 5명이 국회에 입성한다.
서울=김재수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