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철<사진 오른쪽> 돈운학원 이사장과 노우섭 대전예고 교장이 교정을 거닐며 재단과 학교 발전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인중 기자 |
#혼돈의 시대를 살다
1945년 광복 직후였다. 혼란과 혼돈이 난무하던 시절, 고 조병옥 박사의 부름을 받고 공직에 들어섰다. 올해 타계 11주기를 맞는 서붕(瑞鵬) 박병배(朴炳培), 그의 27살 청춘은 충남도 경찰부장 대리에서 시작했다. 해방 후 체계조차 제대로 서지 않을 정도로 국가적 위기에서 전국 8도 경찰국장을 지내며 치안을 담당했다. 6ㆍ25전쟁 후인 1956년 서울 경찰국장을 끝으로, 결국 그도 낙향했다. 낙향 후 그의 선택은 언론이었다. 현 대전일보 경영인과 발행인을 지냈다. 하지만, 곧바로 1958년 정계에 뛰어들었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4, 5대 민의원과 7~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국방부 정무차관과 민주통일당 총재대행도 지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등장한 5ㆍ16 당시, 대표적인 야당의원이었던 서붕은 3년 4개월 정도 옥살이를 겪었다. 70년대 말, 박 정권의 종말과 함께 정계를 은퇴했다.
#예술을 고민하다
▲ 대전예고 본관 전경 |
그래서 대전을 선택했다. 당시 대덕군(현 유성구 복용동)에서 출생했던 그는 선대 때부터 운영하던 서울의 장훈학원(장훈고)이 있었지만, 고향과 문화예술을 위해 과감히 대전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돈운학원과 대전예술고는 그렇게 탄생했다. 돈운(遯雲)은 서붕의 부친의 호다. 1992년 개교와 첫 입학식 때, 초대 이사장인 서붕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의 발전은 국력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나라 살림이 나아지면서 예술을 지망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부권에는 예술고등학교가 없어 많은 학생이 진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설사 서울로 유학시킨다 하더라도 학비 부담과 생활지도 문제가 많음을 알고, 부모님들의 고심을 매우 안타깝게 여겨 중부권 대전에 예술고등학교를 개교했습니다.”
#정신을 이어받다
중부권 예술의 산실을 탄생시킨 서붕은 9년 후 세상과 등졌다. 이후 여러 명의 이사장이 거쳐 갔고, 2008년 그의 손자인 박영철 현 이사장이 등장했다. 역사를 전공한 박 이사장은 한국의 관료주의와 파시즘 등에 관심이 많았다. 관료주의 중에서도 교육제도에 마음이 쏠렸다.
운영자로서,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매력이 그를 재단으로 이끌었다. 그가 첫선을 보인 건 전문자문위원단 설립이다. 서울예고, 선화예고 등과의 차별화와 국제화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그는 현재의 예술고 교육을 이렇게 진단했다. “대부분의 예술고는 껍데기다. 공교육 아니라 사교육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 대한 신뢰성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다른 학교보다 우리 학생들에게 뭔가 다른 걸 제공하고 싶어 선택한 게 바로 기초실력”이라며 “각 분야의 명장들을 초청해 공교육기관인 학교 교육의 신뢰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 박영철 이사장이 교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훈은 숭조감은(崇祖感恩:조상의 뜻을 받들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자), 극기인내(克己忍耐:자기를 이기고 끈기있는 참음으로 예술인으로서 큰 뜻을 이루자), 성실근면(誠實勤勉:학업에 정진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책임을 다하자) |
전문자문위원단 구성과 함께, 박 이사장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건 바로, 국제화다. 사실 전문자문위원단도 이런 측면에서 구성했다.
예고는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예술엔 국경이 없다. 한정돼서도 안 된다는 게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특히, 현재의 예술역량은 서울에 집중돼 있다. 대전은 지역적 한계와 경제적, 정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 극복해주기 위해 그가 꺼낸 카드가 바로 국제화다. 스페인과 영국 브라이튼 칼리지 등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특히, 서울 개포지구에 추진 중인 국제학교(브라이튼 칼리지) 설립을 계기로 재단과 예고의 국제화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는 포부다. 박 이사장은 “재단의 국제화와 학생의 국제화가 목표다. 외국 학교와의 지속적인 교류와 유치를 통해 대전예고를 세계적 명문의 예술교육기관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윤희진ㆍ사진=손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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