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
최근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내가 과학자가 되기로 한 결정이 절대 후회할만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5월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가 결정되고, 최근에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되는 등 단군 이래 최대의 과학프로젝트인 과학벨트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초 원천 연구가 제자리를 잡고 세계적인 독창성을 가지는 중이온가속기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도 세계적인 연구시설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자긍심이 생기고, 20년 전 결혼 일주일 만에 일본 이화학 연구소로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을 하러 떠나야 했던 필자로서는 우리 후배들이 외국 연구기관이나 시설을 빌려 쓰지 않고도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이제 본 궤도에 오르고자 하는 과학벨트 사업의 궁극적인 성과는 기초과학 연구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그 성과가 첨단산업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즉, 우주와 물질의 근원을 이해하고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연구 성과로 새로운 원소와 핵, 신물질 등을 합성하는 능력을 갖게 되거나, 미래의 인류가 당면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신소재를 산업화하며, 건강한 수명 연장의 꿈을 성취하는 것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만큼 경제 발전을 이룬 것에도 과학기술 성과가 큰 기여를 했다. 응용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유럽핵입자연구소(CERN), 미국 페르미연구소 등 세계일류 연구소와 국내 일류 연구소들인 KIST, KAERI, ETRI 등과 차이가 있는 것은 국제화 수준과 원천 과학기술 보유 여부 때문이며, 연구 성과의 산업화 실용화 실적에 의한 것이 아님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외국의 세계적 연구소들은 국제적인 글로벌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하며, 전세계에서 석학들이 모여들어 연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곳이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꼭 필요한 것은 충분한 연구 예산 지원 뿐 아니라, 독창성 있는 대표 연구 시설, 국제적인 교육, 의료, 음식, 언어, 문화, 예술 등을 갖춘 매력적인 연구 환경이다. 따라서 기초과학연구원에 글로벌 연구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에 CERN에서 힉스 입자를 최초로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결과 발표에 전세계가 떠들썩하게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우리가 한국인 과학자를 연구단장으로 세계 최고의 연구팀을 구성하여 이와 유사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배출한 것에 버금가는 국제적 위상을 과학 분야에서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업은 미래 세대에 열매 맺을 씨앗을 뿌리는 투자의 관점으로 보아야 하며, 금방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우 1930년대부터 중이온가속기를 운영하는 등 기초 원천 연구에 집중 투자하여 최근에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는 성과를 이룬 것이다. 또, CERN 등의 입자물리학 기초연구의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WWW와 이메일이 개발되고 발전한 것과 같이 장기적인 투자를 통하여 초대형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지난 1일 세종시(연기군)에서 중이온가속기 이용과학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세계적 가속기 이용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한국의 작은 지자체가 후원하여 이런 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었다. 일본 RIKEN, 프랑스 GANIL, 러시아 두브나 등에서 국제공동연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였고, 미국의 브래드 셰릴 교수는 FRIB 이용연구자 그룹에 한국의 참여 확대를 요청하였으며, 캐나다, 독일 GSI에서도 자기나라의 경험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다.
또한 미국 FRIB 유저 그룹의 리더인 ORNL의 마이클 스미스 박사는 한국형 중이온 가속기의 연구자들도 1000명 수준까지 확대가 필요하므로, 체계적인 연구인력 양성을 조언하였고 한국을 위해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의 계절학교 프로그램을 개편해 주겠다는 제안도 하였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 것을 보고 “한국과학의 미래가 밝다”며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외국은 나이 많은 연구자들이 주로 참여하는데 한국은 정말 다르다며, 인력양성과 성공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결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이 제대로 정착하고 성공하려면 국제협력과 우수한 인력의 보급 및 양성이 필수적이고, 정부의 체계적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협조가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할 것이다. 거점지구에는 국제적 과학센터를 만들고, 기능지구에서는 인력을 양성하며, 정주환경과 비즈니스를 지원함으로써 한국을 넘어 세계로 발전하는 과학벨트가 될 수 있다. 계획이 처음 수립되고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이미 3년 이상의 기간이 지났으므로 더 이상 지체되지 않도록 현안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수고들이 헛되지 않고, 대한민국 젊은 과학도들이 미래에 풍성한 결실을 맺는데 좋은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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