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특수상대성 이론을 반박하는 실험이 또 한 번 성공해 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지난 9월에 이어 최근 또 한번 빛보다 빠른 이원자입자의 속도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난 100여 년 간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되어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성역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또한 CERN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는 영화로도 유명한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가속기에서 생성된 반물질을 비밀결사 조직이 탈취해 바티칸을 폭파시키려 한다는 스토리다. CERN은 1954년 스위스에 설립된 유럽연 합공동자원의 입자물리학 연구소로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핵심 사업인 중이온 가속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본보는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했다는 발표 직후인 지난 9월 말 세계적인 핵입자 물리분야의 산실인 CERN를 찾았다.
▲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가속기(LHC)의 건설지역 조감도<왼쪽 사진>와 내부에 설치된 가속기 모습. |
▲어디에서 왔는가?=스위스 제네바 도심에서 프랑스 국경 쪽 교외지역인 메이런에 위치한 CERN의 전시 홍보관이자 대표적 상징물인 '더 글로브(지구)'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첫 문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는가?'다. 태초의 우주와 인간의 시작을 묻는 이 질문은 가속기를 이용한 CERN의 핵심 연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이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우주과학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CERN은 7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 지구 최대의 대형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LHC)를 2008년부터 가동하며 지구와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다. LHC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일대 100m 지하에 마련된 직경 9㎞, 길이 27㎞의 원형 터널에 구축, 우주 신비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CERN의 핵심 연구장비다. 가속기로 가속한 입자를 인위적으로 진공관 속에서 충돌시키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순간적으로 수많은 현상(반응)과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진다. ALICE(충돌실험), ATLAS(우주의 표준모형설계) 등 현재 CERN이 수행하는 빅뱅과 같은 우주의 시초를 밝히는 이 같은 사상 초유의 실험은 바로 LHC가 있기에 가능했다.
LHC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로 프랑스와 스위스 영토에 걸쳐 있으며 제네바 시를 지하에서 둘러싸고 있다. 건설비용만 10조원이 들어갔다.
지난해 이 가속기를 이용해 137억년 전의 '빅뱅' 상태를 재현하는 중이온 충돌 실험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실행됐다. 납 이온을 충돌시켜 태양 중심부 온도보다 100만 배 높은 극초온 상태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마저 고온에 녹아내렸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핵심 시설로 대전시 유성구 신동과 둔곡동에 건설되는 중이온 가속기도 기본 구조와 원리는 LHC와 동일하다. 그렇다고 LHC 규모를 상상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LHC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초국가적 프로젝트다. 과학벨트에 들어설 중이온 가속기는 신소재 개발에 초점을 맞춰 CERN규모의 100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LHC를 이용한 CERN의 각종 우주 프로젝트에는 핵·입자 물리 분야 교수 및 연구원, 학생을 포함해 석학 및 연구원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CERN의 엄청난 규모의 가속기 개발과 이를 이용한 첨단 연구가 전 세계 과학기술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럽 기초과학 발전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첨단연구가 새 IT 창출=첨단 입자가속기 개발은 가속기 개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중이온 가속기 등 첨단 가속기는 핵입자물리학이라는 기초과학을 토대로 IT와 기계, 소재 등 여러 분야가 결합된 융합 장비이기 때문이다. 첨단 가속기는 개발 과정은 물론이고 활용과 응용까지 IT와 접목이 필수적이다.
▲ CERN 상징 건물 더 글로브(The Globe). |
CERN의 과학기술자들은 입자 충돌실험과 검출기를 통해 확보한 다량의 정보를 어떻게 한곳에 모아 보다 편리하게 공유·활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클라우드컴퓨팅의 출발점이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CERN은 기존 월드와이드웹과 클라우드컴퓨팅에 이어 최근 고속의 저장압축 프로그램과 정보관리시스템까지 직접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 보안기술 연구와 비즈니스 적용 방안도 별도의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또 컴퓨팅과 통신, 전자, 발전과 의학 분야까지 별도의 연구파트로 지원하고 있다.
첨단가속기 개발과 이를 활용한 연구에서 기존 IT 관련 제품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ALICE, ATLAS 등 CERN이 시도하는 거대한 실험과 연구는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최초의 연구이자 시도기 때문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항공우주 연구, 뇌·인지과학 등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모든 분야가 그렇다. 새로운 연구는 새로운 IT 도구를 필요로 한다. 가속기 개발과 활용이 IT산업 발전까지 이끌게 되는 이유다.
또 가속기 자체는 초전도 기술 등에서 반도체 등 전자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CERN의 첨단 연구와 새로운 IT제품의 자체 개발은 어떤 분야(기초과학)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연구개발 과정 속에서 응용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IT도 뒤따라오게 만든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과학벨트 성공열쇠는 정부 지원”=지난해 1월 22일 CERN 롤프 디터 호이어(Rolf-Dieter Heuer) CERN 사무총장은 대덕특구 핵융합연구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학벨트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처럼 밝혔다. 호이어 사무총장은 입자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 CERN 점심 시간에 전 세계에서 연구를 위해 모인 학자와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그는 “CERN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도 되지 않은 1954년에 기초과학을 위해 만들어 당시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CERN을 통해서 기초과학이 급속히 발달할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과학벨트를 놓고 정치적인 논란이 있는 것을 알지만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디어와 비전과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과학벨트가 성공할 것”이라며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건대 장기적·안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전 세계 60여 개국, 1만여 명의 과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CERN과 연관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적도, 전공도 다른 과학자들이 함께 작업하지만 의외로 어려움은 없다. 이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한 공통된 집념은 연구 생산성도 자연스럽게 높여 준다”며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형 과학 프로젝트는 결코 전통적인 형태의 닫힌 조직으로는 진행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시작 단계부터 분업과 협업을 유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제네바=배문숙 기자 moons@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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