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과학의 경쟁력이 뭐냐는 질문에 막스플랑크 국제관계부 바바라 스파일만(Barbara Spielmann) 박사는 “강한 책임감”이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했다. 스파일만 박사는 “연구자들은 자율성이 보장되고 막대한 연구비가 지원되는 만큼 스스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과학기술정책의 원칙은 연구자금을 지원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대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연구자·연구조직 및 기관을 평가한다. 한마디로 자율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묻는 구조다.
▲절대적인 자율성 보장=막스플랑크연구소에는 원칙이 있다.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든든한 후원자 역할만 한다. 독일 정부가 막스플랑크연구소에 연간 13억 유로의 막대한 연구지원비를 내주면서도 연구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자율성을 보장한다. 이 같은 연구풍토는 결국 오늘날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 막스플랑크 본부 국제관계부 아시아 담당 사비엔 팡렁(사진 왼쪽)·바바라 스파일만(오른쪽) 박사. |
과학벨트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 백년대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호기심 기반의 기초과학 성과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며,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고 평가받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는 기초과학 선진국 독일의 대표적 연구소인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도 100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부분이다. 이 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로 발돋움한 것은 '지식은 응용을 선행한다'는 철학을 충실하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연구몰입 환경으로 세계적 인재들이 모인다=세계 연구기관들이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2만5000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있다는 점. 독일 내 80여개 연구소에 1만3000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있다. 여기에 정규 연구원 외에 무려 1만2000명에 달하는 주니어(석사 이상) 및 초빙 과학자들이 화학과 물리학ㆍ생물학ㆍ의학 분야 등에 고루 배치돼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연구원 2만5000명 중 40% 가량인 1만명이 외국인이다.
▲ 독일 뮌헨의 고색창연한 옛 도심 호프가르텐가에 자리 잡은 '막스 플랑크(Max Planck Gesellschaft)'본부 정문에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
막스플랑크의 이런 점을 감안,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구몰입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좋은 과학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자연스럽게 우수한 과학자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월성 연구, 고위험 연구, 도전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젊은 과학자 또는 중견 과학자들이 연구단의 리더로 와야한다는 지적이다.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마음껏 연구할 수 있게 되면, 수월성이 있는 최고의 과학적 성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단순하지만 경험적으로 증명된 성공 비결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과학자의 시각이다.
▲과학벨트에 주는 교훈=과학벨트가 모델로 삼고 있는 80개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대학이나 기업에서 할 수 없는 대형 연구, 모험적 연구,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시작한 실험적인 연구가 대학에서 수용되면 연구소는 발전적으로 해체된다. 수십년 동안 유지돼 온 이런 다이내믹스가 세계 최고의 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모토는 '통찰이 응용에 선행해야만 한다(Insight must precede application)'는 플랑크의 경구다. 이 경구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과학벨트에서 정치적 수사를 걷어내고 기초과학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의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의 운영체제는 과학자들의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되 지역에 산재한 연구단을 과학적, 소프트웨어적으로 강력하게 통합하고 수월성 기준을 공통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목소리다. 또한 막스플랑크가 세계적 연구소의 수월성을 지켜나가는 운영체제에 대한 철처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시각도 높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자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연구단의 과학자들이 스스로 과학적 이슈를 결정해 나가는 시스템이 정착되는 것도 과학벨트의 성공을 가름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했다.
스파일만 박사는 “주변 대학과 공동 연구를 장려하면서도 단기적 성과를 강요하지 않는 막스플랑크 재단의 독특한 지원 체계가 풍성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도 통일 이후 경제에 주름이 지면서 국가의 교육 연구 예산 지원이 축소됐다. 그 바람에 대학과 연구소들은 구조조정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긴 안목으로 학문 강국의 위치를 다져 왔다. 막스플랑크 재단과 산하 연구소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뮌헨=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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