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주의 주도 뮌헨 옛 도심 호프가르텐가(街)에 자리 잡은 '막스플랑크(Maw Planck Gesellschaft)'빌딩.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조형물이 지켜선 입구에 들어서자 클라우스 클리칭(1995년 노벨 물리학상), 테오도어 핸슈(2005년 노벨 물리학상) 등 독일을 빛낸 노벨 과학상 수상자 두상(頭像)이 양편에 줄지어 있다. 모두 막스 플랑크 출신 과학자들이다.
본보는 과학벨트 핵심 사업인 기초과학연구소 사이트랩의 모델인 노벨상사관학교인 독일 뮌헨 막스플랑크 연구소 본부를 찾아 과학벨트의 성공을 위한 해답을 찾아보았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란=막스플랑크협회(Max-Planck-Gesellschaft, 약자:MPG)는 독일의 독립 비영리 연구 기관의 연합회로서 연방 정부와 주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정식 명칭은 막스플랑크 과학진흥협회다.
▲ 막스플랑크 연구소 내부, 막스플랑크 출신 과학자들의 두상이 전시된 모습. |
80개의 연구 기관으로 이루어진 막스 플랑크 협회는 자연과학, 생명과학, 사회 과학과 예술과 인간성 등의 일반적인 공공 관심에 관한 기초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소에는 과학자 1만3000여 명을 비롯해 고용원 2만1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예산 약 13억 유로(2009년 1월 기준) 가운데 84%는 주와 연방의 기금에서 나왔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연구의 우수성에 집중한다.
네트워크의 공적 기금을 사용하는 독일 연구 기관 중 특기할 만한 기관은 프라운호퍼 협회로 응용 연구를 수행하며 산업 협동에 집중한다. 그리고 헬름홀츠 연구소(Helmholtz-Gesellschaft)는 독일의 국립 연구소의 네트워크이며 라이프니츠 연구소 (Leibniz-Gemeinschaft)는 기초에서 응용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다.
독일 전역에 76개, 해외에 4개(미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브라질) 등 80개가 있다. 분야별로 '화학물리학기술분과' '생물학의학분과' '인문사회과학분과'에 소속되며 최상위기구인 막스플랑크연구협회의 지휘를 받는다. 막스플랑크연구소 하나는 우리나라 과학벨트에 생기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사이트랩)과 유사하다.
▲눈 앞의 성과보다는 긴호흡=과학벨트의 성공적 조성을 위한 첫 번째 요건은 바로 '긴 호흡'이다. 이는 기존의 응용개발 연구와 기초과학 연구를 구분 짓는 핵심적 요소다. 과학벨트는 5년, 10년 안에 성과를 내고자 하는 사업이 아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한 세기 넘게 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체질을 선진국 추격형에서 창조형·선도형으로 바꾸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업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1948년 설립, 60여 년 간 꾸준히 투자해온 결과 세계적 기초과학연구소로 성장했다. 노벨상 수상자 17명 배출, 여기서 나오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연구 성과들은 각종 응용연구개발, 산업화와 연계되어 국부를 창출해 내고 있다. 막스플랑크는 눈앞의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가지고 긴 호흡 투자라는 비결을 가지고 있다.
▲ 막스플랑크 로비 사진. |
과학벨트 거점지구의 개발 역시 이러한 우수한 연구자들이 안락하고 안정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우수한 기존 인력의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신진인력 양성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경우 '주니어리서치그룹(junior research group)'을 운영해 젊은 리더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들 중 30% 이상은 디렉터로 선정돼 현재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핵심 연구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진인력 양성의 선순환 구조는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오랜 기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과학벨트에 세워질 기초과학연구원도 이같이 신진인력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중요한 의결사항은 반드시 '평의회 승인'=막스플랑크재단의 구조와 운영방식 가운데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중요한 의결사항은 반드시 평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의회의 임원은 독일의 정재계, 과학계, 방송계 등을 대표하는 인물로 구성된다. 매우 까다롭고도 엄격한 검토를 거쳐 선출되는 임원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개방적이며 과학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국가의 안녕을 최우선시 한다.
80개 막스플랑크재단 산하 연구소들은 각각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으나 유수 대학 및 견실한 산업단지 인근에 모여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막스플랑크재단은 화학·물리·기술 분과, 생물학·의학 분과 그리고 인문과학 분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 분과의 주요한 책무 중의 하나는 새로운 소장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들 소장들에 의해 많은 것이 좌지우지 되므로 엄중한 심사를 거친다. 나이나 경력보다는 학술적인 업적의 우수성이 반드시 입증된 사람들이 소장의 자격을 갖는다.
소장선임위원회는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유수의 석학들로부터 의견을 구함으로써 역량 높은 소장을 선임할 수 있게 된다. 선출된 소장은 연구주제의 선택을 포함한 많은 것들에 대해 완전한 독립성을 갖게 된다. 각 분과는 신규 막스플랑크연구소 설립 제안에 대해 승인 가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막스 플랑크는 연간 13억 유로의 예산을 쓴다. 대부분은 정부 돈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심지어 결과물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않는다. 덕분에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막스 플랑크 과학자들은 마음놓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 막스 플랑크 연구원들이 연봉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 성과가 대학을 능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배를 만들어줄 뿐 신대륙을 찾아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구 속에서 과학자들은 신대륙을 찾아냈다. 그렇다고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어떤 식으로든 '압박'이 있으니 최고 성과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해답은 조직에 있다.
막스 플랑크는 3개 분과에 걸쳐 78개 연구소를 산하에 두고 있다. 한 연구소에 소장 한 명이 있는 게 아니라 통상 4~8명 정도의 소장(Director)을 두고 있다. 이들은 돌아가며 행정과 연구를 관할한다. 행정 부담에 짓눌려 연구를 소홀히 하는 구조가 아니다. 소장은 새로운 분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35~45세 과학자를 위주로 뽑는다. 이들은 막스 플랑크에 온 이후 최고 과학자로 거듭난다. 뽑는 과정은 엄격하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단 임명되면 모든 권한과 자율이 보장된다.
막스 플랑크를 총괄하는 이사장 임기는 6년. 이사장의 임기 보장은 막스 플랑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밑거름이다. 그러나 리더를 뽑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대략 3~4단계 선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소 추가 설립 등 주요 의사 결정은 소장 253명이 모여 결정하는데, 과반수가 아니라 80%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굉장히 보수적이지만 외풍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다.
독일 뮌헨=배문숙 기자 moons@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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