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핵심 사업인 기초과학연구원은 논의 초기부터 벤치마킹으로 삼는 모델이 있었다.
바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MPI)다.
이들 연구소는 각각 60~9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연구소로 노벨상만 각각 9명, 19명씩 배출했다.
본보는 RIKEN과 MPI 현지 취재를 통해 기초과학연구원의 성공적인 개원을 위한 해답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 9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화학연구소 본부 정문. |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15명 가운데 9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젊은 시절 여기서 연구원으로 경험을 쌓거나 이곳의 가속기로 실험해 노벨상 수상의 토대를 다졌다.
노벨과학상 수상에서 2000년 이후 일본의 약진은 무서울 정도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노벨과학상 경쟁에 뛰어든 뒤 지난해까지 모두 14명(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난부 요이치로씨는 미국 국적이라 제외)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특히 2000년 이후 7차례에 걸쳐 9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2000년 이후만을 놓고 볼 때 '미국·영국·독일'의 노벨과학상 빅3는 미국·영국·일본순으로 바뀌었다.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유일의 기초과학 종합연구소다.
이화학연구소내에는 과학벨트에 설립될 기초과학연구원과 성격이 유사한 기간연구소가 설립돼 있다.
기간연구소 산하에는 화학생물, 신소재, 녹색물질, 광학 등 4개 연구부서와 37개의 독립 실험그룹, 9개의 별도 연구조직이 있다.
정규직 연구원만 678명에 이른다.
박사후연구원 등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2167명이다.
올해 연구비로는 약 550억원을 받았다.
방사광가속기(SPring-8, XFEL)와 세계에서 연산처리속도가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K' 등 거대 장비용 예산을 제외하고 순수 기초 연구 규모로는 이화학연구소 안에서 가장 크다.
기간연구소는 연구자들에게 이런 연구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실험그룹이 연구의 '씨앗'을 내놓으면 이 중 '열매'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연구부서로 올려 보내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 아시아 과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주기율표에 이름을 올린 모리타 박사의 주기율 113번 발견 전시홍보물. |
1번 수소(H), 2번 헬륨(He), 3번 리튬(Li), 이렇게 118번까지 이어지는 주기율표의 113번째 원소를 발견한 인물이다.
모리타박사는 이화학연구소가 직접 만화책을 제작할 만큼 연구소의 '아이콘'이다.
▲100년 앞을 내다본 기초과학 투자=일본의 기초과학 투자는 1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메이지유신에서부터 시작됐다.
국가과학기술능력을 키우기 위해 1866년 교토대, 1877년 도쿄대, 1917년 RIKEN 등을 세워 국가 주도의 기초과학기술에 투자했다.
1920년대부터는 해외 공동연구를 본격화해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1949년에 유카와가, 1965년에 도모나가 신이치로 등 일본이 독자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힘이다.
일본인이 노벨과학상을 타기까지의 시간은 업적 달성 후 평균 15년 가량이 소요됐다.
또 수상자의 평균 나이가 74.7세인 것으로 집계됐다.
장기간의 연구지원이 이뤄져야 수상도 가능한 셈이다.
1995년부터는 주요 정부부처를 아우르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을 5년 단위로 세우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이화학연구소 역사 홍보물. |
이는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연구체계에서 참조됐다고 지난 5월 과학벨트안을 발표할 때 관련부처는 설명했다.
이화학연구소 연구체계는 크게 3개의 테마로 구분돼 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선진화 연구(Advanced Science)'와 일본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를 연구하는 '전략적 연구(Strategic Research)'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 해주는 '연구 인프라(Research Infrastructure)'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이화학연구소에는 각각 선진화 연구에 4개, 전략적 연구에 8개, 연구 인프라에 5개씩 세부적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은 각각 공조와 지원 체계를 이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도 이화학연구소처럼 본원, 캠퍼스, 연구단 또 이를 뒷받침해줄 기능지구의 긴밀한 관계가 과학벨트 성공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내 5개 지역과 해외에 10개 연구소가 분산된 형태다.
전체 상주 연구인력(2008년 현재 3111명) 중 11.7%가 박사과정 후 연구자와 대학원생이고 3700여 명이 방문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향후 어떻게 인재풀을 운영할 것인가가 기초과학연구원 운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화학연구소는 30% 안팎을 해외 과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결국 기초과학연구원도 이들을 어떻게 끌어와 유기적인 연구체계를 운영할지도 관건이다.
▲연구자에게 전권을=이화학연구소 본점인 기간연구소에는 종신직 연구원을 주축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기초과학 분야라면 무엇이든 본인의 관심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나갈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이화학연구소는 보통 연구소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7년에 한 번씩만 동료 점검(Peer review)을 받는 조건으로 전권을 연구책임자에게 맡긴다.
중간점검에 따라 예산이 깎이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하고 20~30년 이상씩 한 분야에서 연구 실적을 낼 수 있다.
반면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의 한 해 예산은 2017년 기준으로 6500억원이다.
8년의 시차를 두고 있는데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딱 3분의 1 수준이다.
이는 50개 연구단에 배분되는데 결국 가중치를 둔다고 해도 한 연구단에 한 해 예산으로 130억원을 넘지 않는 셈이다.
물론 대형시설 및 장비, 해외연구기관 유치 등에 필요한 예산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해외 우수한 과학 인재를 데려오기에는 경쟁력이 낮은 수준이다.
다수의 노벨상을 배출한 연구소에서 연구했던 과학자가 자신이 속했던 곳보다 30% 수준의 예산을 확보한 신생 연구소로 옮겨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기초과학연구원이 일반기업과 다름 없이 연구주제 선정과 인력운용 등의 측면에서 완전한 자율권을 갖고 있다는 이화학연구원 운영시스템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성공의 해답이 있다고 지목하고 있다.
일본 와코=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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