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병풍 - 멀티공간 분할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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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병풍 - 멀티공간 분할 장치

  • 승인 2011-07-26 14:59
  • 신문게재 2011-07-27 21면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병풍은 작은 폭의 기다란 패널을 여러개 이어 붙여서 공간의 폭에 맞게 접거나 펴세워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등장하는 것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각 가정마다 하나씩 마련해 두고 흔히 써오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기와집이나 초가집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관혼상제를 비롯하여 모든 잔치와 행사에 반드시 등장하였다. 우선 이 병풍의 역할은 공간분할을 하는 역할을 하였다.

병풍을 어느 장소에 치면 병풍의 앞쪽공간과 뒤쪽공간이 분리가 된다. 병풍의 앞 공간은 성스러운 공간이 되고 뒤쪽공간은 일상의 공간이 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성(聖)과 속(俗)의 공간분할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랑·신부가 결혼을 할 때 치는 병풍속의 공간은 신랑신부의 성스러운 결합과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기를 비는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제사를 지낼 때 치는 병풍은 조상들의 영혼을 대접하는 신의 공간이 되는 북쪽을 상징하게 된다. 항상 병풍이 놓이는 쪽의 방향은 일상생활에서 이야기하는 동·서·남·북 방향과는 다르게 병풍이 동쪽에 놓였더라도 그곳은 일상적인 동쪽이 아니라 종교적인 북쪽이 되는 것이다. 이 병풍이 상징하는 북쪽이 중심이 되어 다른 방향이 잡히게 된다. 상례때에도 주검을 병풍을 쳐서 가려 놓으면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가 생겨나게 되고 성스러운 죽은자의 공간, 신의 영역이 된다.

병풍에는 부귀영화와 수복장생을 상징하는 여러 그림들이나 생활에 교훈이 되는 좋은 글귀들로 장식하여 항상 병풍을 보면서 생활속에서 곧고 굳은 심성을 다지곤 하였다. 또한 겨울철에는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벽쪽에 세워서 바람을 막아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도 하였다. 지금도 길고 큰 방을 여러개로 나누거나 하나를 쓸 때 중간중간에 병풍식으로 문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공간분할 슬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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