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체육팀장 |
커피광이었던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글을 쓰다가 몸과 손이 굳고, 머리가 둔해지면 먹처럼 진한 커피를 들이켜는 것으로 자신에게 채찍을 가했다. 자신을 한계점까지 내몰며 집필을 했던 발자크처럼 대부분의 사람 역시 초조와 불안 해소, 원활한 업무를 위해 한 잔의 커피로 자신을 채찍질한다. 일에 속도를 올리고 집중하려고 할 때 으레 찾는 커피는 근대화로부터 시작된 과도한 업무형태를 부추기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다.
커피가 대중화되기 이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차(茶)와 커피의 다른점은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는 것을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 차를 마시는 것을 티 타임(Tea time)이라고 표현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커피타임(Coffee time)이라는 하지 않는다.
브레이크와 타임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일의 효율을 위해, 속도를 위해 커피를 마시는 반면 차는 한숨 돌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려고 마시는 것이다. 커피가 스피드와 경쟁의 음료라면 차는 여유로움의 음료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인류학자 가운데에는 커피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빨리빨리' 문화가 경제성장의 한 축이 돼버린 우리나라도 커피문화가 차 문화보다 발달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상화된 빨리빨리 문화와 커피문화는 초조함과 불안함의 다른 표현이고, '나 아니면 안 돼'식의 사고로 경쟁을 부추겨, 우리의 심신을 갉아먹고 있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조와 불안의 또다른 원인은 경제력이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경제적 풍요는 사람을 여유롭게 하지만 빈곤은 초조와 불안으로 이어져, 사람을 각박하게 만든다. 풍요롭지 못한 대전시티즌은 초조와 불안속에 수시로 사장과 감독을 교체했다.
대전시티즌 15년의 역사는 여유가 없는 초조와 불안, 각박함의 역사였고 커피의 문화가 주류를 이뤘다. 팬들도 여유롭지 못한 행동에 가세했다. 2004년 김은중이 이적할 때 서포터들은 김은중 인형을 만들어 밧줄을 목에 매는 교수형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넉넉지 못한 살림 때문인지 '그동안 고마웠다. 다음에 다시 대전에서 뛰어달라'는 말로 정을 나누는 여유로움보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곳간이 넉넉지않은 구단 역시 초조와 불안의 커피문화에 젖어들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마케팅이라 할 수도 없는 70~80년대 국산품 애용운동과 같은 애향심에 호소하며, 올인하는 것이 유일한 마케팅이었다.
제품의 질이 수반되지 않는 국산품 애용운동은 반짝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한계는 자명한 일이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초 코끼리밥통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 손에는 대부분 코끼리가 그려진 일제 조지루시 밥솥이 들려 있었다. 코끼리 밥솥으로 지은 밥은 오래 보관해도 변하지 않고 맛도 좋았기 때문이다.
대전 시티즌도 마찬가지다. 상품이라 할 수 있는 경기력이 향상되지 않는 가운데 '재미없더라도 대전 축구를 사랑하자'고 애향심에만 호소한다면 이는 강요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초조와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대전시티즌은 최근 또다시 감독을 교체했다.
신임 유상철 감독은 대전시티즌을 당장 변화시키겠다는 말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이야기했다.
대전시티즌의 생존을 위해 이제는 구단과 팬, 시민모두 초조와 불안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2013년 승강제 시행 등으로 물리적시간의 여유는 없더라도 최소한 심리적인 여유를 가지고 유상철호를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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