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과학기술발전에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제정한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의 날은 4월21일이 아니라 4월19일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4월19일에 ‘과학데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과학의 날 행사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4월19일은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이 숨진 날입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여겨지던 찰스 다윈을 기린다는 의미와 함께 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대적인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과학데이를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김용관(1897∼1967)선생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를 창립한 인물.
김용관 선생은 1932년 4월19일, 찰스 다윈의 사망 50주기 행사가 세계 각국에서 성대하게 열리자 여기서 힌트를 얻어 과학데이를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당시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은 결과 1934년 4월19일 첫번째 과학데이 행사가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를 목표로 열렸고 과학지식보급회가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제2회 행사때는 ‘과학데이’ 깃발을 앞세운 54대의 자동차가 서울시내를 행진하는 장관을 연출했고 군악대가 김억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과학의 노래’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제가 과학의 날을 핑계로 민족운동을 전개한다는 이유로 1937년 이 행사의 옥외 개최를 금지하고, 이듬해 김용관 선생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과학지식보급회도 해체되면서 '과학의 날'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과학의 날이 부활하게 된건 60년대 과학기술처가 생기면서 부터입니다.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현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해 발족하자 이를 기념해 다음해인 1968년 4월 21일부터 매년 과학의 날 행사를 열기 시작했고 올해로 44번째를 맞고 있습니다./온라인뉴스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