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며 일으킨 대표적인 독립운동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1919년 1월 22일 고종 황제가 갑자기 승하하자 일본인들이 독살했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이에 우리 민족의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극에 달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앞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발표가 있었던데다 2월8일 일본 동경에서 500여 명의 우리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하면서 국내에서의 3.1 만세운동을 촉발하게 됐습니다.
특히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만세운동은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천안 병천시장에서는 3,000여 명의 군중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반대하여 만세를 부른 가운데 일제의 강제 진압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만 19명에 달하고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부상하거나 투옥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전에서는 3월16일 동구 인동장터에서 산내면 출신 양사길이 주도한 3·16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어 3월 27일에는 김창규, 4월 1일에는 김직원과 박종병 등이 잇따라 만세운동을 벌이게 되면서 동구 인동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은 대전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3월16일이 되면 매년 재현 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서도 4월 6일 장날을 맞아서 횃불 시위를 벌였고 주모자 등 8명이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작년까지 16년째 대규모 횃불 시위를 재연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구제역 여파로 전국 시군의 3·1절 기념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 또는 연기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독립기념관에서 열렸던 3·1운동 공식 기념식이 올해는 개관 24년 만에 처음으로 취소됐으며 지난 32년동안 매년 2월 28일에 개최해오던 천안 아우내 봉화축제 뿐 아니라 충북 음성과 청원군에서도 기념행사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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