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피라니아의 설 쇠기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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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피라니아의 설 쇠기 예감

  • 승인 2011-01-26 18:43
  • 신문게재 2011-01-2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명절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충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들이 기혼여성 100명을 조사했더니 명절 스트레스 지수가 평균 38.7이었다 한다.(본보 26일자 7면 머리기사) 명절 스트레스는 이혼(73), 부부의 별거(63), 가족 건강의 변화(44)보다는 낮았으나 직장 전환(36), 작은 부부싸움(35), 이사(20)보다 오히려 높았다.

서양에도 크리스마스 스트레스 같은 게 있지만 미미한 정도였다. 충남대병원 교수들 지적대로 가족과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거야 당연하다. 한국인의 '귀성 본능'엔 욕망으로의 귀환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특이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알에서 갓 깰 당시 입력된 냄새의 기억으로 먼먼 회귀 끝에 알을 낳고 눈을 감는 연어의 행렬에 비유하는 것은 다분히 과장이다.

상대적이지만 우리가 상업적 논리, 시장질서 흐름으로 설명 안 되는 모태적 본능이 강하다고는 생각한다. 출산율 저하도 필자는 집단무의식의 눈으로 보는데, 풍족하면 번식을 서두르고 궁핍하면 번식을 미루는 속성은 인류의 오래디오랜 학습체험의 소산이다. 돈 몇 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 출산장려책에 한계가 분명한 이유다.

근간에는 또 인체 기능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 결과이며, 질병의 원인을 적응 실패로 돌리는 다윈의학에 관심이 많다. 조상에 없던 병이 생겨나는 것도 수렵과 채집에 맞춰 설계된 우리 몸의 늑장 적응력과 현대사회의 부조화라는 데 상당히 동의한다. 명절마다의 전쟁 같은 귀성과 역귀성의 대이동 파노라마 역시 좀 달리 본다. 내면을 뜯어보면 집단 귀소본능의 거대한 프로그램에도 거품이 있다.

그건 그렇고, 본능적 습득이거나 학습이거나 요즘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톡톡히 체험하고 있다. 육식어 피라니아 실험 같다고나 할까. 수조 중간을 투명 유리판으로 막고 먹이 주기를 반복하다 유리판을 치워도 피라니아는 돌진을 포기하고 그 앞에 멈춘다. 스스로 정한 한계에 익숙해진다는 것. 설 명절 해외여행을 구상한 지 몇 년째지만 결행에 옮기지 못하고 어느새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누군가의 규정처럼 새로운 도전을 막는 '내면의 악마' 탓인지는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올 설날엔 강물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피라니아 아닌 수조 속 피라니아를 택할 구실이 보태졌다. 인파와 물류 이동이 최고조에 달하는 설 대목을 전후해 구제역 방역선이 무너질세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설 쇠러 오지 말라”고 말릴 지경이다. 대통령에 대한 설 귀향 중단 담화 요청도 나왔고, 홍성군수는 26일 중도일보에 귀향 자제 광고를 냈다.

초유의 일이다. 둥지로 회귀하는 우리의 귀소본능을 얼마나 주춤하게 할지는 하루 이틀 지나봐야 알겠지만, 다른 고민도 있다. '자녀가 가족이다' 84.5%, '친부모가 가족이다' 77.6%,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족이다'라는 응답이 23.4%라는 여성가족부 조사 사례 때문이다. 부모 자식이 서로 가족으로 생각지 않는다니 어이없다. 가족이 혈육에서 동거 개념으로 바뀐다는 설명은 아무런 이해도 위안도 되지 않는다.

이 국민의식 조사에 적잖이 쇼크를 받았던 터라 쓸데없이 걱정이 앞선다. 매뉴얼대로 따르다 3조원 넘게 날린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부른 귀향 자제 움직임에 며느리들이 속으로 만세삼창을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직장 옮김'보다 심한 명절 스트레스라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고향에 가든 못 가든 구제역이 가족 유대감, 동족 상관성까지 무너뜨리지 않기만을 바라야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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