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지사는 지난 1년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또 드라마 ‘대물’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자신이 품은 정치적 이상과 뜻을 내비치고 있다.
숨가쁘게 달려 온 정치 인생에서 잠시 간의 휴식기를 갖고 있는 이완구 전 지사로부터 ‘야인’으로 지낸 지난 1년 간의 소회와 최근 지역 현안에 대한 견해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36년 동안 공직 생활을 했다. 모든 공직자들이 그렇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가정에 소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가장 안타깝다. 두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아들이 결혼을 할 때 조차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아 가족들이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사 시절 상을 당했을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외부에 알리지 않았었는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해를 하면서도 서운함이 컸던 모양이다. 때문에 항상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기본적으로 공직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아픔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공인으로서 나름의 길을 걸었지만, 가족의 일원이자 가장으로서는 아픔이 많았다. 그래서 쉬는 동안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다녀오기도 하면서 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또 지난 1년이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간 공직자로서 제대로된 길을 걸어왔나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지사직을 사퇴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게 됐는데, 그간의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나?
▲세종시 문제는 역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만약 원안대로 추진되지 않았다면,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하는 내용의 문제를 떠나 정서적 측면에서 충청인들이 겪을 정신적 공황이 매우 컸을 것이다. 대다수 지역민이 원안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반대 결론이 났다면 그 충격과 공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사 입장에서 선택을 한다면 충청민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지역민의 염원대로 된 만큼 앞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고 본다. 난관도 많을 것이다. 원안 추진이 결정됐지만, 정부의 의지와 관심, 추진 내용과 방식 등 관심가져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연계 문제 등도 큰 걱정거리다.
산넘어 산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균형있는 감각과 입체적 생각으로 매듭짓는 문제를 현 정부 뿐 만 아니라 차기 또는 차차기 정권에서도 고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역 정치인들도 긴 안목과 균형감각을 갖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지역민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냉정하게 이성적이고 냉철하면서도 균형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정치적 접근이나 이용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밖에 충청권 현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도청이전과 과학벨트 문제 등 지역 현안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둘 다 매우 간단한 문제다. 현재 충남도의 재정자립도로 봐서는 3500억에서 4000억원에 달하는 도청 이전 비용을 감당 할 수 없다. 내가 국회의원을 할 때 전남도청이 이전했는데, 당시 경험을 갖고 국회 도서관 자료 등을 통해 계산해보니 전남도청 이전시 여러 항목에 걸쳐 6500억원 정도의 이전 예산이 전부 국비로 지원 됐다. 특히 광주 옛 도청사도 광주시에 부담을 안기지 않고 정부가 해결해 줬다.
앞으로 2000억원 이상 정부 지원을 받아내야 하고, 현 도청 부지 매입 비용도 대전시에 부담시켜서는 안된다. 충남지사와 대전시장이 공조해서 중앙 정부에 정치적 접근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과학벨트도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지금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이지만, 대전과 충남, 충북의 오송ㆍ오창을 묶는 것이 처음 구상이었다. 지난 2006년 국정감사 당시 정두언 의원이 충남에 와서 과학벨트 얘기를 처음 꺼냈는데, 당시는 대선 캠프가 꾸려지기 전 이었지만 정치적 경험에 비춰볼 때 정 의원의 얘기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후 나온 것이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고, 기본 구상이 대덕특구와 행복도시, 오송·오창을 벨트로 묶는 것이었다. 거기에 내가 천안·아산 첨단산업단지를 묶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건의한 바 있다. 과학벨트는 충남 뿐만 아니라 충청권 모두의 공통 분모로 만들어서 풀어야 하고, 그것이 지역 정치인들의 몫이다. 광역 발전을 위해 현직 국회의원들이 응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최근 충청권 정치세력의 문제를 언급했는데, 지역 현안과 관련해 정치권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이 요구된다고 보나.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당을 떠나 중앙정치 무대에서 충청권 출신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국정 과제든 예산문제든 중앙정치의 중심에서 충청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역 이익을 대변할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역민이 중앙정치를 보며 우리 지역 출신이 중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 느낄 수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거기에 답이 있는 것이다.
정치인 개개인의 역량과 자질 문제도 있겠지만, 지역에서도 당을 떠나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양면적 측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더 진정성 있게 노력해야 하고, 지역민도 이제는 충청권의 격에 맞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일시적인 바람으로 왔다갔다 한다든가 감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누가 우리를 대변해 줄 것인지 염려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지닌 인물을 필요로하는 자연발생적인 민심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도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전임지사로서 현 충남도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 평가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 다만, 안희정 지사가 나이와 경륜에 비해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행정 경험이 없음에도 신중하고 무겁게 행보하는 것을 보며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내년 상반기 정도에는 도정을 이끌 자신의 명확한 철학과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중앙정부와의 관계 설정과 위상 정립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도정은 국정의 축소판이다. 앞으로 한정된 재원으로 도정을 끌고 가는데 많은 한계를 느낄 것이다. 복지를 강조해도 재원 조달과 배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런 난관에 부딪힐 때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정치 일정과 관련해 지역에서는 총선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치적 구상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민심을 토대로 움직이는게 맞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민심의 향배 따라 움직이는 게 정도다. 대전과 충남 여러 지역의 민심을 계속 듣고 있다. 총선까지는 앞으로 1년 이상이 남았는데, 정치적으로 볼때 굉장히 긴 시간이다.
또 정치는 생물이라 가변성이 있을 수 있다. 이후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정치를 모르는 입장도 아니고, 더 무겁게 행보 할 수 밖에 없다. 섣부른 판단과 행동, 민심에 역행할 수 있는 언행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충분히 듣고 느끼면서 판단할 생각이다.
국민들이 한편으로는 확실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길 바라는 측면도 있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대전에서의 출마를 유력하게 보는 것 같다.
▲대전 출마 얘기가 나오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주변 얘기를 들으며 정리를 해보면 첫째는 내가 대전서 학교를 나왔다는 점 때문이고, 충남청장을 할 때 대전ㆍ충남 전역을 관할하며 대전을 포함해 모든 읍면동을 다 돌았다. 또 지사를 지냈고, 도청 공무원 수 천명이 대전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총선 출마와 연관지어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적으로는 일부 언론에서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대전과 충남을 아우르면서 대표성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의미로 얘기하고 있음을 주변에서 듣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대단히 높다. 정치인들도 놀라는 것이 시골 면 단위 노인정을 가보면 생각지도 못한 정치적 수를 내다본다. 국민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국민 여론 듣겠다는 것이 가볍게 하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여러 수를 읽으면서 연고를 가지고 내가 대전에서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직 대전 출마를 결심하지는 않았다. 속단은 금물이고,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드라마 '대물'을 빗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어떤 메시지를 얻고 있나?
▲세상은 변했다. 젊은 세대는 조금의 경제적 여유보다 감정이 통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다음 선거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국민소득 얘기하면서 조금 잘 살게 해 주겠다고 얘기하는 것 보다, 국민의 대표로서 진정 우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지를 중요시하는 정서를 읽지 못하면 선출직으로 살아 남기 힘들다.
'대물'의 주인공이 성공할 수 있는 요체는 국민과 부둥켜 안으며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지사 시절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보며 교육부와 담판을 지어서 아산에 대안학교를 세웠고, 결식 아동을 위해 아동희망프로젝트도 만들었다. 외자유치를 아무리 해도 소외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면 소용 없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총선이든 대선이든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지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충청인에게는 분명 나름의 혼백이 있다. 충청에 사는 사람 모두가 지역이 잘 되길 바란다. 문제는 지역발전과 국가 발전을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정치인과 지역민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생각하면서 지역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사고해야 중앙에서도 통할 수 있다. 너무 지역에서만 바라봐도 안되며, 전국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회가 되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 이완구 전 지사는?
1950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대전중학교와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나왔으며, 미시간주립대와 단국대에서 각각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으며, 충남지방경찰청장을 지낸 뒤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 자유민주연합 사무총장과 대변인을 지냈다. 16대 국회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선 4기 충남도지사로 당선된 뒤 지난해 12월 지사직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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