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경쟁력 ‘과학기술+디자인+비즈니스’ 통합

핀란드의 경쟁력 ‘과학기술+디자인+비즈니스’ 통합

■ 국가미래 창의적 과학인재 양성에 달렸다 5. 선진국, 국가미래 건다<핀란드> - 학교와 과학관 등 과학교육현장 소개

  • 승인 2010-10-17 13:49
  • 신문게재 2010-10-18 12면
  • 배문숙 기자배문숙 기자
핀란드 디자인을 말할 때 빼놓아선 안될 인물이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알바르 알토(1898~1976). 호수에서 착안한 곡선 모양의 꽃병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는 평생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주창했다. 결핵요양원을 지으면서 호흡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금속 재질은 물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구부려서 만든 ‘파이미오 체어’는 그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적 디자인이다.

올해 초 헬싱키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국립대가 생겼다. 유럽 굴지의 디자인 명문학교로 꼽히던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과 헬싱키경제대학, 헬싱키공과대학을 합친 정원 1만 6000명의 알토대학이 출범한 것이다.

이런 핀란드의 융합교육(Convergence Education) 실험은 서로 다른 분야의 ‘생산적 충돌’을 통해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전 세계 교육계 및 산업계가 핀란드를 주목하는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은 미래의 국가 발전을 책임질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에 국운을 걸고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 인재 육성에 발 벗고 나선 강소국들의 교육 현장에서는 인재 육성 시스템의 개혁이 더 미룰 수 없는 실정이다. <편집자주>


▲과학기술·디자인·비즈니스가 한 지붕 아래=세계최초로 순수하게 혁신에만 초점을 맞춘 다학제적인 '혁신대학'이 출범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대학을 출범시키기 위해 핀란드 정부가 지난 15년 간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건 15년에 걸친 철저한 준비다.

3개 대학은 1995년부터 각 대학 학생을 선발해 조를 짜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통합 실험을 실시했다. 공동 프로젝트에 의한 첫 졸업생이 배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알토대를 비롯,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 내에 입주해 있는 △핀란드국립기술연구센터 △MIKES △GTK △CSC △노키아 △코네 △네스트오일 등 산·학·연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약 5000명 정도다.

학술연구조직만 19개에 이르고 있으며, 단지 내에서 종사하고 있는 하이테크 기술자, 학자 등 고급 인력들을 합하면 약 1만6000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알토대학생 1만6000명을 더하면 3만2000명에 달하는 인력이 단지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핀란드의 전체 인구가 531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고급 인력이다. 임대사업의 경우에도 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customer-oriented) 대여방식과 산업부문 특화(sector specific expertise)를 취하고 있다.

학생 창업은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의 역동성을 말해주고 있다.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학생이 특별한 금전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도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핀란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까지 인재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특정 기업에 취직을 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사업을 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취업이 창업 다음의 차선책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학에서의 창업활동이 활발한 만큼 일반 연구기관의 창업활동은 더욱 활발하다.

국가연구기관인 VTT의 경우 산업체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창업해 나가는 인력이 연간 5~10%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창업 전 단계에서 창업 이후의 단계까지 연구자에 대한 도움이 확실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에서는 사회적으로 창업에 대한 위험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젊은 연구자들이 비록 창업에 실패했더라도 금전적 부담을 갖지 않고, 재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돼 있다.

알토 대학(전 헬싱키 공대) 박사과정 김원재씨는 “입주 기관들 간의 긴밀한 연계와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과 창업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북유럽 최대의 창업 보육센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철저한 교육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의적 인재 기르는 핀란드=핀란드의 혁신 시스템은 옛 소련 붕괴로 1991년 발생한 경제적 격변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당시 핀란드의 대외 무역 규모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경기가 침체에 빠지게 됐다. 죽다 살아난 핀란드는 교육·과학·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혁신 능력을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의 혁신 시스템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 민관의 공동 참여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정부는 민관 가릴 것 없이 광범위한 부문에 기금을 유연성 있게 투자한다. 기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테케스와 시트라다. 테케스는 국립 산업 R&D 펀드, 시트라는 국립 혁신 펀드다.

혁신에 대한 핀란드의 전체론적 접근법이 가장 잘 투영된 것으로 알토 대학을 꼽을 수 있다. 알토라는 대학 이름은 핀란드의 전설적인 건축설계사 알바 알토의 성(姓)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혁신 대학'으로 곧잘 불리곤 한다.

알토 대학은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신규 펀드로 설립, 상용화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인재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가운데 알토대 본부가 있는 '디자인 팩토리(Design Factory)'는 알토대의 첫번째 프로젝트.

이곳에 들어서니 각종 기계, 선반, 컴퓨터, 캔버스 등이 흩어져 있었다. 방에는 다양한 프로젝트 이름이 걸려 있고, 구석의 한 대형 스크린 앞에서는 학생들이 닌텐도 위(Wii)로 몸을 움직이며 스포츠게임을 하고 있었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비즈니스맨이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제품을 디자인하는 '플랫폼'이다.

한누 세리스토 알토대 부총장은 “공대와 산업디자인 연계 코스는 외국에도 있었지만 비즈니스까지 세 분야가 통합된 과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학생들이 다른 분야 사람들과 토론하고 작업하면서 스스로의 능력과 디자인의 핵심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디자인 팩토리에는 3개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체 소속 디자이너 등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학내 벤처기업도 출범했다.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등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도 모색한다.

알토대 자체가 세기적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핀란드의 야심 찬 국가 프로젝트다. 알토대의 핵심가치는 혁신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알토대는 올해 '창조적 지속가능성(Creative Sustainability)'이라는 대학원 과정을 신설해 도시계획, 건축, 디자인, 경제학 등을 총망라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발전 해법을 찾을 계획이다.

한누 세리스토 부총장은 “핀란드 교육은 역사적으로 평등주의가 강조됐고 엘리트스쿨은 없었다”며 “알토대는 긍정적인 의미의 엘리트 스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질은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되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 열려있는 학교로 운영해 겸손하면서도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핀란드 헬싱키=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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