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ㆍ성취도 평가 제로... 경쟁보다는 '균등한 교육기회'

우열반ㆍ성취도 평가 제로... 경쟁보다는 '균등한 교육기회'

■ 국가 미래 창의적 과학인재 양성에 달렸다 4. 선진국, 국가 미래 건다 - 세계 최고 교육 강국으로 부상시킨 핀란드식 창의적 교수법

  • 승인 2010-10-10 17:48
  • 신문게재 2010-10-11 11면
  • 핀란드 헬싱키=배문숙 기자핀란드 헬싱키=배문숙 기자
노키아와 자일리톨의 나라로만 알려졌던 핀란드가 교육계에서는 보수와 진보 등 성향에 상관없이 ‘핀란드 교육’을 바람직한 제도로 이야기하면서 이 중 참고할 만한 방안이 무엇인지도 살피고 있다.

‘핀란드 교육’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ㆍ이하 PISA)’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읽기ㆍ수학ㆍ과학 과목을 대상으로 3년마다 이뤄지는 조사에서 핀란드는 첫 조사가 이뤄진 2000년 이후 2003년, 2006년까지 계속 여러 과목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최하위권 학생층은 OECD 국가 평균인 6~8%보다 낮은 1~2%에 불과하다.

또한 핀란드는 뉴스위크 선정 살기 좋은 나라 1위이기 때문에 ‘교육 1위= 삶의 질 1위’라는 등식에 주목을 받고 있다.

본보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의 최고 교육에서 만들어지는 ‘창의적 인재 양성의 비결은 무엇일까’의 해답을 찾기 위해 핀란드 헬싱키를 찾았다. <편집자 주>
 
사실 핀란드가 수학ㆍ과학 교육 강화에 나선 것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1996년 핀란드 교육부는 고등학교에서 이들 과목 커리큘럼이 실험은 물론 실생활에 응용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3400만유로(약 544억원)를 투입해 수학ㆍ과학 교육 강화 프로젝트인 ‘LUMA’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핀란드는 헬싱키공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LUMA센터를 설립해 학교와 대학, 산업체를 연결시키고, 과학ㆍ수학ㆍ공학에 대한 학습, 연구 역량 강화와 역량 있는 교사ㆍ교수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

또 기업들도 학교 내 수학ㆍ과학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키아를 비롯한 기업들은 별도 예산을 투입해 실험 기자재 구입, 수학ㆍ과학 교육 보조자료 지원 등에 나서고 있다.
 
▲경쟁보다는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 = 핀란드에도 1985년 이전까지는 우열반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통합교육의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는 우열반 편성을 금지하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레이조 라욱카넨(Reijo Laukkanen) 국장은 “연구 결과 통합교육은 학습 부진아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낸 반면 최우수 학생들은 통합교육이든 수준별 교육이든 항상 높은 성취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핀란드는 학교간 수준차가 그 어느 나라보다 작은 것이 특징”이라면서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이 주어졌음에도 80% 이상의 학생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를 택한다”고 말했다. 의무교육 연한은 9년이다. 처음 6년은 1명의 담임교사가, 후반 3년은 교과별 교사에 의해 수업이 진행된다. 학업성취도 하위 그룹의 경우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보충 학습이나 교사와의 일대일 학습 등을 진행하는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핀란드 교육제도는 경쟁보다는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핀란드 대학의 학생선발 방식은 국가 고등학교 졸업시험과 학교 성적, 그리고 대학별 입학시험이 있다. 국가 고등학교 졸업시험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실시되며 최소 네 과목(핀란드어 등 모국어는 필수) 이상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응시 자격은 3회까지만 주어진다.

핀란드에서는 주요 대학 인기학과 진학에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핀란드 대학 입학생 평균 연령이 OECD 국가보다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

 ▲표준화된 평가 =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국가 표준의 성취도 평가를 치르지 않는다. 기초학교 9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3학년)때 딱 한 번 치르는 국가 시험과 인문고등학교 3학년때 치르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제외하고는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표준화된 시험이 없다.

 경쟁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학교와 학생을 비교하는 전국 단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다. 다만 임의로 선택된 학생과 학교를 대상으로 샘플 조사를 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할 뿐이다.

 ▲영유아 보육 투자, 학생복지 = 핀란드에서는 만 6세 취학전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용품, 급식, 건강 및 구강진료, 기숙사, 통학수단 등도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은 60%대에 불과해 80% 후반대인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특히 핀란드는 유아기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초등학교 이후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신념으로 영유아 보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1~5세 유아들을 보살피는 보육교사가 3~5명당 1명씩 배치되며, 취학전 아동들에게는 1년 동안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등록금이 세계 2위의 살인적인 수준이며, 급식은 물론 학교준비물들도 각자가 마련해야 한다. 또 영유아 교육은 고가의 영어유치원부터 제대로 감독이 되지 않는 질 낮은 어린이집까지 각각이어서 어릴 때부터 교육환경의 격차가 아주 심하다.

 ▲교사 전문성 신뢰 = 핀란드에서 교사는 인기가 매우 높은 직업이다. 대부분 5~6년에 걸친 교사 양성교육을 통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다. 핀란드에서는 학교 교육의 목적과 교과목별 교육 목표 및 원칙은 정부가 정하지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교재를 선택하는 등의 권리는 모두 학교와 교사들이 갖는다. 특히 어떤 참고자료를 활용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교사들의 권한이다.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핀란드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들이 TAT라는 연합조직을 만들어 초ㆍ중등학교에 과학과 수학 교육에 필요한 보조자료를 만드는 데 투자하고 있다.

 교과서로만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각종 애니메이션과 실험 도구 등으로 만들어 원하는 학교에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기업들도 학교 내 수학ㆍ과학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키아는 각급 학교 실험 기자재 구입과 학교 설립에 138만유로를 지원했고, 다른 기업들은 우리나라 전경련과 비슷한 기업 연합체인 TAT 산하 경제정보국(Economic Information Office)을 통해 200만유로를 투입해 수학ㆍ과학 교육 보조자료 지원 등에 나섰다.

특히 경제정보국은 교사들에게 요청을 받아 ‘맞춤형’ 수학ㆍ과학 보조자료를 제공한다. 이 자료들은 △미래 직업체험 게임 ‘스노위시’ △경제ㆍ수학 게임 ‘이코노랜드’ △유기화학 교실 ‘에브리데이 트레저스’ △핵공학 교실 ‘레디에이션’ △생명공학 교실 ‘시크리츠 오브 더 셀스’ △자원공학 교실 ‘트레저스 프롬 더 딥 그라운드’ △환경 이슈 교실 ‘인바이런멘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7개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리사 텐허넨 루오트사레이넨(Liisa Tenhunen-Ruotsalaine) TAT 경제정보국 책임자는 “수학ㆍ과학 과목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이 흥미를 잃기 십상”라며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재미있게 수학과 과학을 공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수학ㆍ과학 과목에 흥미를 느끼도록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도 그 과목들이 결국 미래 국가경쟁력의 바탕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수학·과학 보조자료를 무상제공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핀란드에 교육개혁은 없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레이조 라욱카넨(Reijo Laukkanen) 국장은 “핀란드 교육 역사에 있어 기존 제도를 갈아 엎은 뒤 새 제도를 시행하는 ‘개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옛 제도 위에 새로운 시도를 한걸음 한걸음(step by step) 쌓아 올린 것이지 하루 아침에 전혀 새로운 제도를 들여와 교육 자체를 탈바꿈 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여러 국가에서 선진사례로 배우고자 하는 핀란드 교육 개혁의 성공 요인은 ‘의지’이다. 정책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의지와 정책을 일관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결인 것이다.

레이조 국장은“국가와 지방, 지역사회와 학교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하면서 일관성 있게 목표를 지켜왔다”며 “오랜 기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과 혁신을 함께 추진해 왔다는 점,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학교의 자율성을 충분히 존중해 주었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핀란드 방식의 교육 (개혁)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핀란드의 교육 방식이 주목을 받은 뒤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핀란드 교육현장을 방문하고 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한다”며 “대부분 핀란드 교육 정책의 긴 역사가 아닌 현재의 모습에만 주력하는데, 좋은 교육을 위한 토대는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에 걸쳐서 꾸준히 마련되어온 것이고 오늘날의 좋은 결과는 그처럼 오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오랜 기간 동안 핀란드가 어떤 하나의 목표로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가를 봐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국의 교육 역사와 문화에 맞는 목표를 장기간 지속 가능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핀란드 헬싱키=배문숙 기자 moons@
 
■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레이조 라욱카넨(Reijo Laukkanen) 국장 인터뷰

- 핀란드가 피사(PISA)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핀란드의 민주적인 교육 시스템을 꼽을 수 있겠다. 학부모들은 교육 정책 입안자들에게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제시하고 학생들에게는 원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이런 민주적인 교육시스템 덕분에 피사에서 좋은 결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학생을 돌본다는 점에서 미국의 교육 개혁안인 ‘No Child Left Behind(학업부진아 방지)’정책과 비슷한데, 핀란드는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에게 맞춘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최고의 학생에게는 가능성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 핀란드 교육의 강점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교육의 품질이 균등하다는 것이다. 우선 사회 구성원 다수가 기본적인 교육을 통해 핀란드의 언어, 정체성, 역사를 철저하게 배운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자기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을 명확하게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다음은 기후 변화, 인권, 평등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이슈와 도전들을 파악해 나간다. 마지막으로 윤리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이러한 기본교육을 탄탄하게 받은 후에 각자의 관심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해 나간다.


- 핀란드의 공교육에 대한 핀란드 부모들의 평가는.

▲부모는 자녀가 집에 돌아와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학교는 독립적으로 학사일정을 진행하고 부모가 학교교사를 자주 찾아가는 일은 흔치 않다. 교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요즘에는 학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지만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는 게 핀란드 교육의 전통이다. 교사를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으로 인정하고 자녀를 맡기며 좋은 교육을 받을 것을 믿는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 ‘다함께 가자’라는 점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 건가?

- 핀란드 교육체계는 우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하는 9년 과정을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 하나로 묶어 놓았다.

9년간의 종합학교까지는 ‘모든 학생에게 질 높은 기회부여’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든 또는 특수 장애인 학생이든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국제평가인 ‘피사(PISA)에서 핀란드는 최근 몇 년간 늘 1위를 하고 있다./핀란드 헬싱키-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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