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았다. 전반기 국정 운영 과정 등에 대해 학계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
▲대체적인 학계의 평가는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전 정부에 대한 실망내지는 반작용이 현 정부의 출범 배경에 크게 작용했는데, 현 정부 역시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먼저 이른바 진보정권 10년 동안 국민적 실망이 컸던 만큼 보수세력의 집권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있었는데, 이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 기업인 출신 대통령인 만큼 일 하나는 잘 하지 않겠나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난 임기 동안 이런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국가경영 능력은 진보ㆍ보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과거 진보정권과 다른 능력을 보여 줄 것이란 기대를 가졌던 많은 국민들이 실망감을 같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국정 운영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국가경영에는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이 분명히 공존한다. 항상 안팎의 도전과 변수가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처하는 지도자의 능력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실망은 아마도 그런 내외의 도전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기인한 것 아닌가 싶다.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반응하는 방식내지는 기술이 바로 리더십인데, 정부는 그런 면에서 기술적으로 매우 서툴고 미숙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판단된다. 리더십의 부재가 반복되다 보니 국민적 실망감도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진단 또는 평가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자기 훈련이 부족했다고 본다. 지도자의 큰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인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 것 같다. 국가 관리와 경영이 기업 운영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대처해 나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종시 문제를 비롯해 대북관계나 대운하 문제 등 여러 국정 현안을 놓고 봤을 때 균형감각을 가지고 대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을 혼동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북 관계를 보더라도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혼란과 미숙함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기업을 경영할 때 경영 방식을 변화시키더라도 최소한 확보한 고객의 리스트는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북 정책에 있어 전 정부와 다른 점이 있어도 일정한 성과는 유지하면서 방향을 선회했어야 한다고 보는데, 완전히 단절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전임 대통령이 한 것은 무조건 다 바꾸려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이 사실이다.
-세종시 문제를 언급했는데, 논란이 불거졌던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
▲세종시 문제는 정파적 입장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고, 이 문제가 등장한 배경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 또는 정치인이 하는 일이 모두 정략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겠지만, 세종시는 전 정부가 나름대로 균형발전의 큰 틀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역시 그것이 표를 의식한 것이라 해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세종시 문제는 전 정부에서 채택해 의회 합의로 법과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주무 관청이 세워진 사항이다. 당연히 국가 정책의 지속성 차원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돼야 하는 것이 었다. 현대 정치의 핵심을 의회 정치라고 볼 때 국회에서 어렵게 합의 통과시킨 사항이라면 누구든 따르고 집행해야 한다. 그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 정책을 운영할 수 없다.
이 문제는 한국정치 발전의 방향과도 연결된 것이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행정 국가의 효율성이 강조돼 왔고, 비판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그것이 바로 개발독재였다. 이제 한국 정치의 중심이 행정국가에서 의회 정치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국회가 정상화 되고, 그 안에서 확립된 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 정부에 대해 평가하면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며, 또 이번 개각을 보는 입장은 어떤가?
▲쉽게 말해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 대해 대부분 고생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평가가 있는 것 같다. 바꿔말하면 국민 생활 전반에 대한 이해가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또 장관들이 잘 안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실용을 얘기하면 국정을 운영하는 각 부처의 장관들이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를 이어가면서 확장하고 실천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완전히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가 어차피 권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 개각 과정은 권력 정치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보여 준 것 아닌가 싶다. 밖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를 적절히 묶으면서, 안으로는 그간 충성했던 인물들을 끌어 안는 듯한 인상이다.
요소 요소에 적절한 사람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해 질 수 있는데, 자기 사람들로만 자리를 채워 놓는 것은 하나의 산성을 구축하는 것에 다름 없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논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전체적으로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지만, 문제는 방법이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제도 벌써 60년이 지났다. 이제 대통령제는 할 만큼 해 봤고, 그 부정적 측면도 드러나 있다. 대통령제가 국정의 효율적 운영과 통합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지속되면서 본래의 취지가 등안시 되고 오히려 대권정치만 남는 상황을 만들었다. 국회의원이 되면 스스로 훈련하고 리더십을 쌓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오로지 대선에 출마하거나 안되면 줄이라도 서야 하는 것이 정치적 관행처럼 돼 버렸다. 대권정치의 틀에 휩싸이지 않으면 안되는 정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개헌을 해도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또 개헌을 하려면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하고 시기도 적절히 무르익어야 한다. 우선 정부 지지도가 높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야 개헌 논의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필요성은 있지만 현 정부 임기내 개헌은 어렵다고 본다. 현재의 개헌 논의는 국면 전환용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의 지역 정당 구도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소위 지역정당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역 정당이 아닌 정당은 없다. 영국 노동당도 시작은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출발했다.
문제는 지역 정당의 존재 이유가 대권만을 위한 것이거나 국회의원 한 두 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특정 지역을 출발점으로 보수의 기치를 전파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비전 같은 것이 분명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어떤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어야 그 정당이 살고 지역이 살 수 있으며, 거기에서 나아가 전국적인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단순히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존립 기반이 될 수 있는 내용과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어야 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담론을 펼쳐 나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온것으로 안다. 현 시점에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라 보나?
▲우리 학계나 정치인 모두 일제 식민사관의 세례가 남아 있어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세종대왕에 대해 연구하며 역사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돼야 국가 차원의 동량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데, 그걸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새삼 느꼈다. 지난 현대사에서 우리 사회가 이룩한 업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세종의 리더십 연구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보다 그가 가진 섬김의 자세다. 세종은 왕조 안의 모든 국민을 신분에 관계없이 하늘로부터 비롯된 '천민(天民)'으로 받들고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여겼다. 중요한 것은 이 섬김을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책무로 여겼다는 것이다. 현 시대적 함의는 현대의 지도자들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헌법 정신에 입각해 주인으로 인식하고, 그 주인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윤재 학회장은 누구?
대전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외이 주립대학교에서 정치리더십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충북대 교수를 역임한 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한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과 한국정치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리더십과 세종리더십 등을 주제로 다수의 특강을 진행해 왔으며, 주요저서로는 ‘정치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세종의 국가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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