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그 밥에 그 나물은 싫어요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그 밥에 그 나물은 싫어요

  • 승인 2010-06-23 11:37
  • 신문게재 2010-06-2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이 헛되지 않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있는 반면에 거짓과 야합과 권위주의 허울에 가린 허명이 많다. 유명이든 악명이든 사후까지 정말 제대로 이름값을 하기도 한다. 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 동파육(東坡肉)이란 오겹살 돼지 찜 요리로 남은 북송의 문인 소동파, 숙주나물의 유래라는 신숙주 등등.


▶삼색나물의 도라지, 시금치, 고사리는 흰색, 푸른색, 갈색의 대표이면서 가채, 야채, 산채를 대표한다. 흰색용으로는 무나물과 숙주나물도 쓰인다. 그런데 녹두로 싹을 틔워 데친 숙주나물의 숙주가 신숙주? 경험으로 입증되고 문화로 강화된 진실이든 다수의 합의로 강화된 사실이든,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세종대왕의 고명(顧命·임금이 유언으로 나라의 뒷일을 명함)을 배신한 역사적 '혐의' 때문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이라면 호(號)가 매죽헌인 성삼문은 매화나무 그 자체다.

▶예부터 눈밭의 설중매, 서리 맞은 국화, 진흙탕 속 연꽃을 으뜸으로 쳤다. 그런 조상들인지라, 어린 세손을 팽개치고 수양대군을 업은 고명대신의 이름자를 잘 쉬는 기질의 음식에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제사상에 오르는 돼지와 숙주나물은 이성계와 신숙주라고 할아버지 무릎에서 들은 야담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신숙주의 정치적·학문적 역량은 청사에 남았으나 권력욕의 나물이 되어 길이길이 씹힌다.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불복종의 행위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이론이 딱 들어맞는다.

녹두싹은, 이 역시 이름값을 잘하는 탕평채에도 들어간다. 탕평채는 청포묵과 쇠고기, 미나리에 황백지단, 김, 고추 등속을 버무린 무침으로, 사색당파의 폐해를 통감한 영조가 신하들에게 붕당정치 퇴치용으로 먹인 음식이다. 남인은 붉은 쇠고기, 북인은 검은 김가루, 동인은 푸른 미나리, 서인은 녹두를 갈아 만든 흰 청포묵을 쓰는 식이었다. 서인인 노론 집권기에는 흰색을 주재료로 듬뿍 넣었다.

▶성패를 떠나 탕평인사, 탕평나물이 되새김되는 이즈음이다. '중통령'이 바뀐 광역단체, 지역 영주 소리를 듣는 '소통령' 시장·군수가 대거 바뀐 기초단체들도 술렁이고 있다. '좌희정'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 등의 인사 폭과 방향에 특히 궁금증이 증폭된다. 염홍철 대전시장 당선자 등 일부는 “보복인사 없음”을 선언했다. 그러나 선거 변수에 따른 긴장감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치우치지 않고 고른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정신이 새삼스럽다. 주석을 어찌 달든 지방 정권교체, 지방 권력교체에도 대의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상응하는 주류 세력의 교체는 불가피하다. 민주주주의 꽃인 선거를 구접스럽게 만든 충성경쟁과 줄서기 문화, 그리고 부수되는 보은·정실·측근·편법인사 등 양분론적 인사도 이쯤 청산해야 한다. 선거를 해도 사람은 그대로인, 관료적 타성과 기득권은 거의 불변인 상황은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 보기에 참 식상한 풍경이다.

▶물론 행정의 연속성도 좋지만 훌훌 털고 갈 것이 있다. 그 밥에 그 나물, 그 나물에 그 밥이 안 되기 위해서다. 선택에는 포기가 따르며 인사에서도 100% 득만 있는 기회비용은 없지만 말이다. 조석 끼니 힘든 시절에야 나물 먹고 자족했겠지만 요새 세상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괴고 누우라면 하늘이 핑그그르 돈다. 메뉴조차 그 밥 그 나물일 때 느낄 상대적 허기, 하물며 시금하게 쉰 나물일 때의 상실감은 어쩌겠는가. 인재를 고르게 잘 쓸 때 인사권자의 인사는 빛난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충남대학교 동문 언론인 간담회
  2. 대전성모병원, 개원의를 위한 심장내과 연수강좌 개최
  3. 대전 출신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사표
  4.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 대전·세종 낙폭 확대
  5. 대전 정림동 아파트 뺑소니…결국 음주운전 혐의 빠져
  1.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지면 소장 취임…"통합방위 고도화"
  2.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 체포…피해 귀금속 모두 회수 (종합)
  3. '꿈돌이가 살아있다?'… '지역 최초' 대전시청사에 3D 전광판 상륙
  4.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트리 불빛처럼 사회 그늘진 곳 밝힐 것"
  5.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2000만 원 귀금속 훔쳐 도주

헤드라인 뉴스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전면 시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책 방향이 대폭 변경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열린 13차 전체회의에서 AIDT 도입과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교과서의 정의에 대한 부분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 '교과서'인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학교가 의무..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대전시가 지역 마스코트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꿈돌이 라면' 제작을 추진한다. 28일 시에 따르면 이날 대전관광공사·(주)아이씨푸드와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 및 공동브랜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대전 꿈씨 캐릭터 굿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라면제품 상품화'를 위해 이장우 대전시장과 윤성국 대전관광공사 사장, 박균익 ㈜아이씨푸드 대표가 참석했다. 이에 대전 대표 캐릭터인 꿈씨 패밀리를 활용한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공동 브랜딩, 판매, 홍보, 지역 상생 등 상호 유기..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가 30년 묵은 숙제인 안면도 관광지 조성 사업 성공 추진을 위해 도의회, 태안군, 충남개발공사, 하나증권, 온더웨스트, 안면도 주민 등과 손을 맞잡았다. 김태흠 지사는 28일 도청 상황실에서 홍성현 도의회 의장, 가세로 태안군수, 김병근 충남개발공사 사장, 서정훈 온더웨스트 대표이사,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김금하 안면도관광개발추진협의회 위원장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나증권 지주사인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회장도 참석,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면도 관광지 3·4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