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눈밭의 설중매, 서리 맞은 국화, 진흙탕 속 연꽃을 으뜸으로 쳤다. 그런 조상들인지라, 어린 세손을 팽개치고 수양대군을 업은 고명대신의 이름자를 잘 쉬는 기질의 음식에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제사상에 오르는 돼지와 숙주나물은 이성계와 신숙주라고 할아버지 무릎에서 들은 야담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신숙주의 정치적·학문적 역량은 청사에 남았으나 권력욕의 나물이 되어 길이길이 씹힌다. 권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불복종의 행위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이론이 딱 들어맞는다.
녹두싹은, 이 역시 이름값을 잘하는 탕평채에도 들어간다. 탕평채는 청포묵과 쇠고기, 미나리에 황백지단, 김, 고추 등속을 버무린 무침으로, 사색당파의 폐해를 통감한 영조가 신하들에게 붕당정치 퇴치용으로 먹인 음식이다. 남인은 붉은 쇠고기, 북인은 검은 김가루, 동인은 푸른 미나리, 서인은 녹두를 갈아 만든 흰 청포묵을 쓰는 식이었다. 서인인 노론 집권기에는 흰색을 주재료로 듬뿍 넣었다.
그런 만큼 치우치지 않고 고른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정신이 새삼스럽다. 주석을 어찌 달든 지방 정권교체, 지방 권력교체에도 대의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상응하는 주류 세력의 교체는 불가피하다. 민주주주의 꽃인 선거를 구접스럽게 만든 충성경쟁과 줄서기 문화, 그리고 부수되는 보은·정실·측근·편법인사 등 양분론적 인사도 이쯤 청산해야 한다. 선거를 해도 사람은 그대로인, 관료적 타성과 기득권은 거의 불변인 상황은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 보기에 참 식상한 풍경이다.
▶물론 행정의 연속성도 좋지만 훌훌 털고 갈 것이 있다. 그 밥에 그 나물, 그 나물에 그 밥이 안 되기 위해서다. 선택에는 포기가 따르며 인사에서도 100% 득만 있는 기회비용은 없지만 말이다. 조석 끼니 힘든 시절에야 나물 먹고 자족했겠지만 요새 세상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괴고 누우라면 하늘이 핑그그르 돈다. 메뉴조차 그 밥 그 나물일 때 느낄 상대적 허기, 하물며 시금하게 쉰 나물일 때의 상실감은 어쩌겠는가. 인재를 고르게 잘 쓸 때 인사권자의 인사는 빛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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