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역사적 관계로 인해 일본인과의 민간교류는 지난했던 때가 있었다. 그 어려움을 뚫고 일본 고마쓰시와 민간교류를 30여년간 해 온 사람들이 대전에 있다. 그 공로로 지난 11월 고마쓰 시장은 이들 대전사람들을 일본으로 초청, 감사장을 수여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한ㆍ일(대전-고마쓰)우호친선협회의 노덕일(사진) 고문을 만나 한ㆍ일 민간교류 내용과 ‘2010년 대충청권 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 관광객을 맞기 위해 우리가 점검해야 할 부분 등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지난 1979년에 한국관악협회(KBA)가 창립됐는데 당시 공군교육사령부 군악대장으로 부임했던 나는 정관을 기초했고, 조직책으로 전국을 돌며 지부창립을 도왔다. 대전ㆍ충남은 전국 최초로 그 해 11월 창립했고 지부창립 기념으로 일본 관악의 명문인 가호고등학교 관악대를 초청하게 됐다.
당시는 한ㆍ일간의 개인 왕래가 쉽지 않은 시기여서 공연단체를 초청한다는 게 외교적으로 쉬운게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동행했던 가스가 마나부(春日學)일본 회장에게 도움을 청해 초청했는데 높은 수준을 보고 우리 관악의 수준을 높여 보려는 마음에서 가스가 마나부 회장에게 부탁해, 일본의 `북륙지구' (이시카와현, 도야마 현, 후쿠이현의 3개 현)와 교류가 시작됐다.
4년간 교류하다 이시카와현에 있는 고마쓰시와 교류하게 된 것은 이들이 더 적극적이고 충청도 사람들의 인심과 비슷한 점, 그리고 타 지역보다 좀 더 `백제적'이기에 1979년부터 오늘날까지 끈끈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과 고마쓰시간 민간교류 활동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부문의 중심은 서울이지만 관악만큼은 대전·충남이 1번지가 됐다. 그동안 수많은 관악교류로 얻은 성과다. 이럴 즈음 교류확대를 위해 1990년에 한·일(대전-고마쓰)우호친선협회를 창립했다. 고마쓰시와 처음엔 관악으로 교류를 시작했지만 합창, 오케스트라 등 전반적인 음악분야와 교육, 관광 등 다방면으로 교류가 확대됐다.
대덕중학교와 일본 데라이중학교가 18년간 교류중인데 그동안 양교의 교류인원만 1500여명에 이른다. 관악, 합창, 오케스트라, 한국음악 등의 연주단체, 개인, 관광 등 분야에서 우리들도 1000여명이 고마쓰시를 다녀왔다. 고마쓰 청소년 취주악단은 1978년을 시작으로 3년 주기로 올해 3월까지 11회 대전을 다녀갔다. 그 인원만 1회 140여 명씩 1500여명에 달한다.
-한일(대전-고마쓰)우호교류협회는 해마다 고마쓰시의 고교생 수학여행단을 대전으로 유치, 대전경제에 도움을 주는 등 `관광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는 데.
▲민간교류를 통해 실질적으로 대전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수학여행단을 유치하게 됐다. 우호친선협회 일본측 회장으로 일본의 정계 실력자였던 이시카와현 의원인 요시다 도시쓰구(후일 이시카와현 의장을 지냄)에게 고마쓰시의 학생들이 수학여행 때 한국과 대전을 찾도록 부탁했다.
일본 쪽에서 이를 받아들여 6년 전부터 고마쓰 고교생들이 매년 350여명씩 수학여행지로 한국을 택하고 있고 그 중 1박 2일을 대전에서 묵으며 돈을 쓰고 가고 있다. 유성의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대전과 공주,부여 등 백제권 관광지를 관람하는 한편 지역 학교와 교류하고 있다. 6년간 2000여명의 일본 학생 수학여행단이 다녀갔다.
수학여행단은 대전에서 한밭고, 지족고, 과학고 등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과학고에선 양 측 학생들이 연구발표 등 학문적 교류로 발전시키고 있다. 수학여행단을 비롯해 그동안 연주단체, 관광단체, 상공인, 정치인 등 5000여명이 대전·충남을 찾았다. 이들이 1박 3식만 해도 지역경제에 틀림없는 보탬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교류중인 고마쓰는 어떤 도시이며 대전과 교류를 통해 일본측에서 나타난 변화가 있나?
▲고마쓰시는 동해에 접해 있는 이시카와현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5만명의 도시로 일본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공해 없는 도시다. 일본의 3대 산 중 하나인 하쿠산(白山)이라는 명산이 있는데 스키장과 골프장이 많으며 기계공장소, 실크, 도자기로 유명하다.
고마쓰 시민들은 조류를 타고 백제사람들이 일본에 많이 왔고 어쩌면 자기들 조상 중에 백제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고 할 정도다. 재일동포들이 북한 만경봉호로 북송됐던 시모노세키 항이 가까이 있어 조총련계 혹은 친북한 사람들이 많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들과 교류하면서 고마쓰 시민들은 북한적 사고에서 친한국 쪽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와 교류하는 일본인들은 고마쓰 지역의 조총련계 사람들을 탈퇴시키고 민단으로 전향시키는 역할도 했다.
200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있을 때는 내가 일본 측 회장 요시다 도시쓰구 등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해 문제의 교과서 불채택운동을 펴 달라고 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고마쓰 지역은 단 1개 학교도 왜곡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 외교적 성과도 있었다. 교류로 알게된 일본인들은 아리랑, 패티김의 `이별', 우리가곡 `목련화', `보리밭' 등도 자기들끼리 부를 정도다. 이별은 가사를 바꿔 졸업식때 졸업가로도 부르고 있다. 우리와의 교류로 고마쓰시는 일찌감치 `한류'가 퍼진 셈이다.
-민간교류를 통해 대전을 찾은 일본인들이 관광발전을 위해 우리에게 충고하는 내용은 없나.
▲우선 관광지가 특색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들도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적ㆍ충청도적인 공산품 등이 없다고 아쉬워 한다. 현대식 건물에 한식집은 안 어울린다고도 말한다. 관광객이 찾는 한식집에선 한복을 입어야 하는 데 그렇질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친절서비스 문제도 지적한다. 음식 담은 그릇을 포개서 가져와 손님상에 내놓는 것을 보고 청결치 못하다고 한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볼거리가 없다는 점도 얘기한다. 일본인 중 일부는 관광벨트를 역사와 교육, 건강에 맞추면 좋겠다는 의견도 낸다. 금산인삼과 유성온천, 공주·부여 및 대전역사와 교육을 연계한다면 좀 더 많은 수학여행단과 관광단체를 유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1800년대 기생집 거리가 200여미터 그때 그대로 보존되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나도 2회에 걸쳐 다녀왔지만 신기했다. 청주공항 운영을 탄력있게 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단체 관광객이 인천공항에서 대전까지 오기는 멀다고 하소연한다. 대전은 과학교육도시이므로 과학고, KAIST, 연구단지내 연구소 등을 연계하면 그야말로 많은 수학여행단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한다.
일본의 고령자는 경제적으론 여유있는 사람이 많다. 백제의 역사적 향수를 이들에게 알리면 많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초가집, 기와집 등 한국적 옛 건물을 되살리면 좋을 텐데 그런 것이 없다는 얘기도 한다.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해줬다. 다만 뿌리공원이 시멘트보다는 옛 뿌리적인 모습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내년은 대충청권 방문의 해다. 대전시를 비롯해 충청권 3개 시도가 관광객 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민간교류와 관광객 유치에 앞장서 오고 있는 입장에 비춰 지자체가 준비해야 할 부분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은 대충청권 방문의 해라고 하지만 방문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안되고 있다. 구호에만 있는 것 같다. 볼거리, 먹을거리 등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방문해 달라고 하면 누가 오겠는가? 공무원들이 마음을 좀 더 열고 정말로 지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대전을 위해 노력했던 외국인이 있다면 찾아서라도 그들에게 명예홍보대사나 감사장을 줘 충청권을 위해 더욱 노력해 주도록 동기부여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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