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쉽게쓰기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죠

판결문 쉽게쓰기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죠

[중도초대석]구욱서 대전고등법원장

  • 승인 2009-09-23 14:14
  • 신문게재 2009-09-24 9면
  • 대담=오주영.정리=강제일.사진=손인중 기자대담=오주영.정리=강제일.사진=손인중 기자
 “판결문 쉽게 쓰기가 바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981년부터 법조계에 입문한 구욱서(54) 대전고등법원장이 초임 법관 시절 부터 갖고 있었던 생각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치며 쉬운 판결문 쓰기를 실천해왔던 구 원장은 서울남부지방법원장 시절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판결문을 ‘국민 속으로’으로 가져가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전고등법원장으로 부임한 뒤에도 구 원장의 판결문 쉽게 쓰기는 진행형이다. 구 원장은 2005년 서울고법 특별4부장 재판장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새만금 사건에 대한 공사 속행 선고를 내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구 원장을 만나 국민 곁으로 향하는 법원 행정에 대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20여 년간의 법조 생활을 하면서 `판결문 쉽게 쓰기'의 선구자라는 평이 있는 데 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서울행정법원 부장으로 재직 시 판결문 쉽게 쓰기를 나름대로 연구하고 후배들에게 전파하려고 했다. 한국 법원의 판결문은 `마침표를 하나만 찍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듯이 쓴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길었다. 우리나라 판결문 형식이 일본에서 전해져 왔기 때문에 판결문 길이도 길고 한자투의 표현이 많았다. 수동태나 겸양어가 너무 많아 쓰다보면 법관들도 주어와 동사, 수식어를 잃어버릴 정도였다. 때마침 법조계 내에서 판결문을 쉽게 써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을 받아 추진할 수 있었다.


-국민에게 신뢰 받는 법원의 노력 가운데 하나가 판결문을 쉽게 쓰는 것이라 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인지.

▲판결문을 쉽게 쓰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단, 문장을 짧게 써야 하는 노력을 판사들이 해야 한다. 요즘에는 판사들이 쉽게 수정할 수 있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문장이 엄청 길어지고 주어, 목적어, 서술어 배열도 자신도 몰라볼 정도로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건이 복잡해 설명이 많이 필요한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 짧게 정리할 수 있는 사건의 판결이라면 되도록이면 짧게 쓰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 문장을 50자 이내로 쓰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후배 판사들이 판결문을 쉽고 짧게 쓰지 않을까 싶다. 판결문을 쓰기 전 머릿속에 사건을 정리해 놓고 쓰면 도움이 될 것이다.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대전고법원장 취임이후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 내용은 판결문을 쉽고 짧게 쓴 것이었고 직접 보고 공부해 보라는 의미였다. 후에 판사들이 이를 갖고 식사 자리에서 토론을 하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쉽고 짧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어 문법에 맞게 쓰는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한국 판결문은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많다. 한국 판사가 한국 문법에 맞게 판결문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후배들이 국어 문법 공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법연수원 교수시절 국어 문법 공부를 별도로 하고 서울남부지방법원장 시절에는 판결문 20건을 국립국어원에 보내 검토를 의뢰하기도 했든데 그 이유는.

▲문법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영어 문법 교육에는 집중하고 있는 반면, 국어 문법 교육에는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국민들이 읽고 이해해야 하는 판결문이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법률문장쓰기 과목을 개설하는 등 법조인이 일정수준의 문법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성과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전국 최우수 기관 부문에 선정되어 포상을 받기도 했다. 사법부 전체 내에서 업무성적, 재판사무 감사결과, 대민행사 등을 점수화하여 평가받은 영예였다.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법정 전반을 방송매체에 공개하는 결정을 내려 법조계 안팎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 같은 결정도 판결문 쉽게 쓰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법원은 국민의 신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기관이다. 재판결과에 대한 승복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판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국민에게 보여주자고 생각하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법정의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될 수 있었다.

또한, 판사들은 평소 어떻게 생활하고, 재판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지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결국 재판의 신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그와 같은 내용의 방송도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하고 알차게 보장한다는 점에서, 법정 중심의 보도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전고등법원도 구술 중심, 공판 중심으로 변화된 법정의 모습을 대전 시민과 충청 도민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대전고법이 다양한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에 대한 개요를 소개해 달라.

▲ 국민이 갖고 있는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은, 그동안 법원에서 서류 중심의 재판을 할 뿐 당사자의 주장을 잘 들어주지 않는 데에 대한 것 때문으로 본다. 그래서 법원은 당사자가 법정에서 충분히 진술, 재판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술 중심의 재판을 추진 중이다.

우리 법원도 당사자 및 대리인이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고, 법관은 당사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나서 판결하도록 하고 있다. 구술 중심주의 구현을 위해 재판부별 전용법정을 확보, 언제든지 법정을 개정할 수 있게 했고, 실물 화상기, 대형 영상스크린, 컴퓨터 등 전자법정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도 마련했다. 특히, 대전고등법원의 형사재판부는 전체 사건의 60% 이상을 프레젠테이션 방법으로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고등법원 부장 당시, 논란이 돼 왔던 새만금 사건을 1심 선고를 뒤집고 공사를 속행하는 취지로 판결을 내려 대법원 확정 판결을 이끌었는데 이를 회상한다면.

▲당시 사건을 이어 맡았을 때 4년 6개월이나 끌어온 사건이었고 이해 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뜨거운 관심이 있었다.

또 공사가 2~3개월만 더 진행되면 완료되는 상황으로 조속한 결심 판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을 막으면 어패류 생산, 습지 보전 등 환경적 측면에서 큰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했었다. 공개적인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이같은 점이 중점적으로 나왔다.

재판부의 고민은 너무나 깊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 두는 것도 환경적으로 매우 좋지 않고 뿐만 아니라 농지 및 산업용지 확보, 관광단지 개발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법조인으로서 국책사업과 관련된 판결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때문에 주변에서 판결이후 원고측(환경단체)으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많이 한다. 사실 그러지는 않았고 판결 이전 선고를 늦춰줄 수는 없겠느냐는 건의는 받았었다.


-후배 법관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항상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법관은 겸손, 성실성, 책임감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은 판사로서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고 국민으로부터 재판권을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항상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법관 스스로 엘리트 의식에 젖어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로 오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판사는 사건을 접함에 있어 성실성을 갖추고 사건의 본질을 보려는 책임감이 요구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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