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정도 머무는 그의 일정표에는 여든이 넘은 이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빡빡했다. 대전, 예산, 서울 등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서“놀고 있으면 더 아프다”며 고암에 대한 열정을 내뿜던 박인경 여사. 그와의 만남으로 고암 이응노 화백 20주기 특별전과 이응노미술관 명예관장으로서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이번 방한은 과거 대전을 찾았을 때와 다른 느낌 받았을 것 같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제자들인‘묵기회’회원들과 돌아본 대전은 어떤가?
▲대전은 올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것 같다. 이번에는 고암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해 의미가 남달랐다. 묵기회 제자들은 고암 선생이 살아계실 때부터 매년 하기 강습을 했다. 이번 제자들의 방한도 올해의 하기 강습의 하나로, 고암 선생의 20주기에 맞춰 2년여 전부터 준비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인 회원들이 많아 프로그램 구성에 고민이 많았다. 관광 시간이 많아지면 하기 강습의 취지가 약해질까 봐, 고심 끝에 스케치 여행 형식으로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100% 성공이었다. 이런 결과는 이응노 미술관은 물론 지자체, 수덕사, 온지당, 한밭대 등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 같다. 묵기회 회원들은 고암 선생의 발자취는 물론 대전의 따뜻함을 모두 느끼고 돌아갔다.
특히 고암 선생의 친척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제자들까지도 함께해 국제적인 행사로까지 마무리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지난 2007년 5월에 대전에 들어선 이응노미술관이 어느덧 2년여 세월이 흘렀다. 명예관장으로 그간의 미술관을 돌아본다면.
▲큰 목적으로 미술관이 세워졌다 해도 모든 것이 금방 완성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완성도는 더 해 갈 것이다.
행사도 다양한 경험이 쌓여야 완벽해지듯, 연륜이 쌓이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관장이 부임하고 학예연구사들이 그동안 쌓아놓은 경험을 활용하면 내년에는 더 좋아지지 않겠는가. 후진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명예관장이라 행정적인 일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미술관의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모든 일에 조급함을 보이면 되는 일이 없다. 특히 미술관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곳이다. 단 2~3년으로 미술관을 평가할 수는 없다.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시민들이 미술관을 믿고 기다려 주길 바란다.
-개관 전‘고암, 예술의 숲을 거닐다-파리에서 대전으로’부터 최근‘주역’전까지 미술관에서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를 다양하게 다루었다. 그간의 전시성과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개관 전부터 최근 전시까지 고암 선생에 대한 다양한 전시가 이뤄졌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겠지만, 고암 선생을 기리고 그의 미술 세계를 알아가는 다양한 전시들이었다.
전시마다 다 완벽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지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이 전시는 이래서 좋았고, 저 전시를 저래서 좋았어”라고 긍정적으로 평하고 싶다.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면 다음번 전시에서 부족함을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고암 이응노 화백 서거 20주기로 알고 있다. 이번 서거 20주기 기념 특별전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
▲세월이 빠르다. 89년 돌아가셨으니 벌써 20년이 흘렀다. 서거 20주기 특별전은 일찍부터 준비를 해야 했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미리 준비되지 못했다.
지역에서는 서거 20주기 기념 특별전이 10월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서거 20주기 특별전은 명예관장인 나만의 생각으로 만들 수 없다. 학예연구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 놓으면 단지 명예관장으로서의 의견만을 제안할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는 서거 20주기 특별전에 대한 생각들이 있다. 학예연구사들이 다양한 계획을 하고있는 만큼 조만간 특별전에 대한 기본계획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개인적으로 고암 선생의 20주기 기념은 이미 곳곳에서 진행됐다. 기일에는 제자들과 함께 고암의 묻힌 곳을 찾았다. 날씨가 너무 추운 관계로 묘지 관리소 측이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아 가까이에 갈 수는 없었지만, 제자들과 함께 추모 모임을 했다. 또 최근 예산에서 묵기회 회원들과 함께 한‘천불전’도 서거 20주기 행사의 하나였다.
▲내가 대전에 오기 전까지 고암 선생에 대한 모든 정리는 된 상태다. 다만, 프랑스 사정상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프랑스에 있는 동양미술학교를 통해 배출되고 있는 고암 선생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느는 만큼 그곳에서의 고암 선생은 여전히 현재형이자 미래형이다.
현재는 내가 사는 프랑스 근교에 고암 선생을 위한 센터와 기념관이 지어지고 있다. 이는 고암의 작품을 건물에 빌려 전시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 고암 선생을 현재의 예술가로 이름을 집어넣을 생각이다.
기념관은 내가 살던 집을 고쳐 새롭게 만들어진다. 여기에 10여 년 지어진 한옥과 센터까지 함께하면 한울타리 안에 3개의 기념관이 있게 된다. 또 인근에 도서관과 공원도 들어설 예정이다. 도서관에는 고암 선생은 물론 한국 관련 서적도 비치해 논문 작성에 쓰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면 고암 선생과 한국에 대한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실 올해 5월까지 완공 예정이었지만 여건에 의해 다소 미뤄진 상태다. 다른 곳은 큰 문제가 없는데, 내가 현재 사는 곳을 비워 기념관으로 만들려다 보니 늦어졌다. 지금의 살림집은 박물관적 성격을 갖는 기념관으로 바뀔 것이다. 빠르면 1년 안에 늦으면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있었다. 조용하던 동네가 관광객들로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고암 선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프랑스 문화재 관리국에서 허가를 내줬다. 그런 만큼 앞으로 100년 후에 그곳이 국보급 문화재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고암 이응노 화백을 작가가 아닌 남편으로 회고해 본다면.
▲처음에는 고암 선생의 작품에 매료됐으나 함께 하면서 그를 평생 사랑하게 됐다. 한 때는 나도 고암 선생처럼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고암 선생의 작품과 제자들이 있기에 그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크다.
고암 선생이 살아계실 때는 스승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젠 제자들이 고암 선생을 연구하고 스승을 딛고 일어서 그 이상으로 훌륭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고암 선생을 더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암 선생의 제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고암 선생이 그만큼 많아짐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고암 선생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말도 한다. 하지만 아직 고암 선생을 알리고 진정한 그의 위치를 찾는 일이 남아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고암 선생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응노미술관이 해야 할 일은.
▲고암 선생의 작품으로‘도불전’을 할 당시 큰 고민이 있었다. 30~40년 전 작품을 시민들이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시 후에 고암 선생은 현대를 포함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암 선생이 돌아가시고 고암 미술 연구소 과정을 만들려 했는데 못했다. 그런 만큼 이응노 미술관의 책임이 크다. 고암 선생을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해줘야 한다.
전시회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고암 선생을 어떻게 연구를 하는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회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랑은 작품을 팔기 위한 곳이지만, 미술관은 전시회를 여는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에 대한 공부의 증거로 전시회가 열려야 한다. 그런 만큼 이제 고암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나와야 할 때다.
-박인경 여사는 고암 선생의 아내로 익숙하지만 촉망받던 화가로 알고 있다. 화가 박인경이 화폭에 담고자 하는 것은.
▲최근까지 살고 있던 집을 고암 기념관으로 고치면서 인근으로 집을 옮겼다. 이사하면서 고암 선생과 관련된 물품은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고암 선생에 대한 일은 계속하겠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되고 싶다. 이제 내 나이도 84세. 남은 인생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서만큼은 남은 인생을 정리하고 그 내용을 화폭에 담을 것이다.
-고암 선생의 작품을 다양하게 접하고자 바라는 시민들에게 한마디.
▲아직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만큼 고암 선생에 대한 작품을 시민들에게 선사할 것이다.“이응노미술관에 대해 생각이 없구먼”이런 말은 듣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은희 기자, 사진=지영철 기자
# 박인경 이응노미술관 명예관장은 누구?
-박인경 여사는‘이응노의 아내’이자, 촉망받는 화가이다. 작가 박인경은 1953년 갤러리‘명동’서울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963년 쌩뜨 에니미, 로젤, 프랑스 갤러리 유니벨시떼(1970), 프랑스 갤러리 누마가(1972), 파리 살롱전(1988), 서울 갤러리 신세계(1999), 대전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6년에는 시집‘소꿉장난’을 출간했다. 현재까지 다수의 그룹전을 참가해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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