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의 본보기였던 미국 국가과학재단(NSF)은 지난 1950년에 설립돼 미국을 현재와 같은 과학 초강국으로 이끈 밑거름이었다. NSF가 지난 2007년을 기준으로 지원한 금액은 약 5조5000억원. 아직 한국연구재단이 NSF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국가 GDP를 감안하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푸는 셈이다.
박찬모 초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이러한 중책을 맡을 가장 적임자로 꼽힌다. 박 이사장은 포스텍 총장시절 포스텍 개혁을 이끌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과학 공약인 ‘577이니셔티브(2012년까지 GDP 5%투자, 7대 과학강국 도약)’도 함께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교감을 통해 초기 한국연구재단의 개혁은 물론 재단운영과정에 필수적인 탁월성, 효율성, 공정성, 전문성 등의 요소를 이끌 인물로 평가된다.
또 박 이사장은 북한 IT관련 저서를 비롯해 평양과기대 설립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남북과학기술 교류에도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올 초부터 인터넷윤리실천협의회장을 맡아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정착을 위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종심(從心)’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열혈 청년과 같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박 이사장을 지난 9일 대전 집무실에서 만나 새로 출발하는 그의 제2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평생 과학기술교육계에서 몸담아 온 과학 기술인이자 교육자로서 국내 최대 연구 지원 전문 기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소감은 어떠한가.
▲한국연구재단의 출범은 학술연구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21세기 지식기반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학술진흥 및 연구개발의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출범은 기존 기관들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진 연구지원 전문기관의 탄생을 의미한다.
우선 한국연구재단은 기존 연구관리 기관이 풀지 못 한 숙제였던 분산과 중복의 문제를 해결해 전 학문분야에 균형 잡힌 지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사회와 미래가 요구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합연구, 기초·원천연구를 발굴·지원할 것이다. 효율적인 연구지원시스템 구축을 통해 그동안 연구자의 발목을 잡았던 규제들을 완화, 연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강화하는 것 또한 한국연구재단 출범의 의미라 할 수 있다.
학술연구 분야에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 한국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 연구재단의 장으로, 또 제 본래 직이었던 연구자의 마음으로 한국연구재단이 우리나라 학술진흥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과학재단, 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기관을 통합해서 만든 거대 기관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대부분 R&D 사업을 위탁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체계적으로 종합적인 연구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설명 해 달라.
▲한국연구재단 출범의 핵심은 통합이다. 분산되어 있던 기존 3개의 연구지원기관이 하나로 통합되어 지원관리시스템이 일원화되고 이를 통해 연구지원사업의 효율성이 제고되어 결국 연구자의 편의성 증가로 이어진다.
통합으로 인해 연구기관 간의 중복지원으로 인한 국가 예산 낭비나 비효율적인 집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연구자들이 연구비 지원을 위해 여기저기로 찾아다닐 필요 없는 연구자 중심의 연구지원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구관리시스템의 차원 뿐 아니라,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연구 분야 간의 통합도 주목해야 한다. 기존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나눠 지원하던 연구분야가 통합, 인문사회분야와 과학기술분야의 융합연구가 확대 지원되는 것도 연구재단 출범에 거는 기대이다.
-출연연구기관내 비정규직 비중이 많은 이유가 인건비를 스스로 벌어 와야 하는 프로젝트 중심 시스템(PBS)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이 시스템으로 인해 과학기술인들이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달라.
▲일찍이 출연연구기관의 연구 환경을 좀 더 경쟁적으로 바꾸기 위하여 PBS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당초의 취지와 다르게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보다 연구비 수주를 위해 연구지원기관이나 정부부처를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즉 연구원의 안정적 연구 환경을 많이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정부에서도 파악, 교과부가 발표한 지난해 말 2009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PBS제도의 인건비 비율이 32.4%에서 55.5%로 상향 조정된다고 발표했다. PBS 제도 인건비 비율의 상향 조정은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연구개발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온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출연연의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된 복안이다.
상향조정된 PBS의 인건비 비율은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드는데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출연연구기관에 지원되는 경쟁적인 연구사업의 상당부분이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지원될 것이다. 이런 연구자들의 이러한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이 도입·강화하는 제도가 연구관리 전문가(PM)제도다.
국책연구본부의 PM들이 연구자들이 원하는 연구사업을 기획해 안전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즉, 연구자가 PM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PM이 연구자들을 찾아다니며 국가가 필요하면서 연구자들이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기획하는 연구자 중심 연구지원을 통해 PBS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안정적이지만 경쟁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각 연구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는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PM들이 연구기획과 지원을 맡게 되고, 해당 프로젝트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어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한국연구재단이 집행하는 연구관리비의 규모가 세계적 수준이다. 올해에만 2조 7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할 예정이며, 국가 R&D 예산을 연 10%확대한다는 계획에 따라 2012년까지 4조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러한 예산 규모는 미국과학재단(NSF)이 5조 5000억 원, 독일연구협회(DFG) 의 1조 6000억 원 등 해외 유수의 연구지원기관과 비교했을 때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한국연구재단은 양적인 측면 뿐 아니라, 연구지원시스템의 선진화에 근거한 연구자의 독립성 확보를 통해 세계 수준의 연구지원기관으로 도약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연구관리전문가(PM)제도를 도입, PM이 최고의 연구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연구의 기획에서 선정, 평가에 이르는 권한을 부여하여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것이다. 또 도전적·창의적인 연구풍토로의 개선을 꾀할 것이다. 고위험(High-risk)을 감수한 연구지원사업이 결국 고성과(High-return)로 이어지리라고 믿고, 최고 5년, 최대 5억원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과기부 폐지, 출연연 통폐합설 등으로 과학계가 위축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이 대통령의 과학기술 브레인으로써 이런 여론에 대한 이사장의 생각은 무엇인가.
▲사실, 제가 옆에서 보기에 과학기술을 향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강하나 행정부와 청와대에 과학기술 전문가가 적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R&D 예산은 2007년 조사결과 GDP대비 3.47%로 이스라엘(4.65%, 06년)과 스웨덴(3.73%, 06년)에 이어 세계 3위의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정부는 매년 10%이상 R&D 예산을 확대할 정도로 과학기술 투자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과학기술에서는 현재의 단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응용개발연구보다는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견인하는 기초·원천연구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다. 따라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중 기초·원천연구비 비율을 25%에서 50%로 확대하는 것이 주요 국정과제다.
과학연구가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큰 그림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북한의 정보 통신 기술(2003)’, ‘IT로 말하는 통일 한국의 미래(2005)’ 등의 북한 IT관련 저서를 비롯해 평양과기대 설립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남북과학기술 교류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고 이와 관련해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 해 달라.
▲북한의 IT에 관한 관심은 지난 90년 중국 연변에서 북한 과학원의 려철기 교수를 만난 후부터 시작되어 연구를 하게 됐다. 그 후 2000년 9월 평양에 있는 김책공대와 평양정보센터에 가서 특강을 하였으며 평양정보센터와 7년간 공동연구를 하게 됐다.
북한과의 IT 교류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통일이 될 경우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IT를 포함한 과학 기술의 평준화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대비해 북한과의 교류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2001년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허가를 얻은 후 지금까지 빠르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남북한 간 과학기술 교류가 있어왔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최초의 사립 국제대학으로 주목을 받아왔는데, 최근 남북한의 냉각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개교가 계속 미뤄진 상태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차원에서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 간 과학기술협력의 거점을 점점 확대·다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북한과의 기술교류를 위한 연구지원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올 초부터 인터넷윤리실천협의회장을 맡아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정착을 위해 관련 기관의 협력과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윤리의식을 위한 효율적인 교육 및 정책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구는 1994년 처음 상용화된 이래 가파르게 상승해 2008년에는 약 3500만명이 넘어섰다. 인터넷 보급률도 2009년 80%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오용, 남용을 넘어 악용하는 사례를 접하며 1990년 포스텍에 부임한 이후 ‘컴퓨터와 사회’라는 과목을 개설해 일찍이 정보통신사회의 윤리교육을 시작한 것이 결코 빠르지 않은 결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 윤리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교육이 절실하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인터넷윤리실천협의회’는 그동안 인터넷윤리 교육용 콘텐츠 개발과 대학 인터넷윤리교육, 인터넷윤리 엑스포 등을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며 인터넷 윤리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범국가적인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인터넷 윤리 정착을 위해 정보화촉진기금 등을 활용해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박찬모 이사장은
▲1935년 충남 천안 출생 ▲경기중·고 ▲서울대 화학공학과 ▲미 메릴랜드대 공학박사 ▲미 메릴랜드대 전산학과 조교수 ▲KAIST 전산학과 부교수 ▲미 국립생의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미 가톨릭대 전산과 교수 겸 과주임 ▲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포항공대 정보통신대학원장 ▲한국정보과학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포항공대 대학원장 ▲포항공대 제4대 총장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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