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전달의 수단인 말은 우리 행동을 창조하고 판별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말싸움에서 어려운 것 하나는 대상을 규정하는 이름 붙이기다. ‘국상’으로 잠시 시들해진 ‘죽봉-죽창’ 시비가 전형적인 예다. 민주노총 대전 집회 현장에서 사용된 대나무를 경찰은 ‘죽창(竹槍)’이라 했다. 검찰은 ‘죽봉(竹棒)’, 법원은 ‘만장깃대(輓章-)’로 달리 불렀다.
이러한 언어감각의 근저에는 가치중립보다는 저마다의 인식이 실려 있다. 황토현 동학축제 체험행사에 죽봉 싸움과 죽창 던지기가 있었다. 가보니 죽봉이나 죽창이나 무기였다. 대전 집회 현장에서 거둬들인 600여개 중 20여개만 끝이 갈라졌다며 확률을 말하지만 다친 경찰력이 104명이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필자가 판사, 검사였다면 만장깃대, 죽봉, 죽창을 구분해서 다함께 썼을 것 같다.
생김새만으로는 죽봉이나 죽창 같고, 어떤 건 그냥 만장깃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죽창”에 놀란 나머지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걱정했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지난 나노소재기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발상법이다. 남이 볼세라, 대통령이 국민을 창피하게 여기면 국민은 대통령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의식으로 나를 보고 내가 사는 세상을 내가 주도하자는 생각. 전직 대통령 서거, 북한 핵실험 등으로 국민적 스트레스가 치솟는 지금일수록 필요한 덕목 아닐까? 그러는 가운데 국격(國格)도 올라가고, 심지어 분단 상황까지도 국가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 골프 영웅 잭 니클러스라면 이럴 때 “나쁜 샷은 기억 못 한다”고 되뇌었을 것이다. 나쁜 기억은 잊어야 이롭다. 근조(謹弔) 모드 속에 주춤한 노동계가 강도 높은 6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감각에 맞는 시위문화로 대전 ‘대나무’의 악몽을 빨리 잊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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