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예식상 가장 중요한 것은 안수입니다. 땅에 엎드리는게 제일 낮은 자세죠. 가난하고 검소하게 낮은 자세로 살겠다는 헌신의 약속입니다. 20년 전에도 대흥동 성당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주교로 사는 게 높아지는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낮은 자세로 봉사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결심하고 다짐하며 예수께 임하는 것입니다.
-가톨릭대 총장으로 계시다가 대전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셨을때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텅 비고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어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모르겠더군요. 쇼크 상태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저에게 주한 교황대사관님이 천천히 가라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멍한 상태였습니다. 대사관님이 ‘누구나 다 부족한 인간이니 염려하지 말고 교황님이 임명하신 것은 하느님이 도우신 것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게 결심하는 것 없이 교황님 손에 이끌려 성체앞에 가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오후에 기차타고 돌아오면서도 논리적으로 아무 생각도 못하고 멍한 상태로 왔습니다. 가톨릭대 총장 임기가 4년인데 지난 여름에 시작했으니 3년 반 후 본당에 나가 신자들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신자들과 지내고 싶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지요. 주교님께 떼를 써서라도 본당에 가고 싶었습니다. 94년부터 97년까지 해미본당 주임신부를 했는데 그때 참 좋았어요. 신자 수 500명 이하의 자그마한 성당에 부임하고 싶은 게 꿈이었습니다.
-주교님은 우리 지역 대전 출신이시라 더욱 반가운데요. 대전고 53기시라 대전에 선후배 동기 친구들도 많으시겠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대학원을 나오신 후 가톨릭대 신학부에 들어가셨고 이후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를 받으셨는데 어떤 계기로 사제의 길을 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무슨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어머님께서 어느 날 집에 오시더니 가톨릭에 대해 좋은 종교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대학시절 군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죠. 사는게 힘들때였습니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누군가를 도와야했을때 똑같이 배고픈 상황에서 선뜻 돕지를 못하고 잠시 망설였던 게 작은 계기가 됐습니다.
유교, 불교, 성경 경전을 모두 읽으면서 성경에 몰두했습니다. 공군장교 시절 성서공부 2년을 하면서 성경공부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하루하루 미사드리고 기도하고 성경만 보고 있으면 너무나 좋았습니다. 성서 말씀만 평생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성경을 읽으면서 느낀 하느님은 사제로 부르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이어 올바르고 응당한 길을 가고 싶어 대학원에 갔습니다. 대학원을 마친후에 비로소 사제의 길을 가게 되었죠.
-사제가 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받게 되는지요.
▲신학교에 들어가면 10년 정도 훈련을 받습니다. 학교에서 7년. 군대에서 3년을 훈련받죠. 먹고, 자고, 기도하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체크합니다. 밤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가 수면시간이죠.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공부와 기도와 지성, 영성.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목적인 것을 보는 거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되기 때문에 신학적, 신앙적, 생활적 교육을 더욱 철저히 시킵니다.
자기 삶을 반듯하게 하고 질서있게 살아가야되기 때문에 기숙사를 신학원이라 부릅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굉장히 엄하죠. 성당에서 공동기도하고 묵상시간을 갖고 미사를 드리는 생활이 매일 반복됩니다. 오전에는 수업. 오후에는 개인 공부와 운동시간이죠. 성체조배를 반드시 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과 기도는 예수님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성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굉장한 기도이고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같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것과 같죠. 성체조배후엔 저녁식사를 하고 묵주기도를 합니다. 저녁 기도후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대침묵 시간입니다. 7년동안 대침묵시간을 매일 저녁 갖는 것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기 위한 훈련과정입니다. 이 대침묵이야말로 독신생활 훈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죠. 남과 대화 나누지 않고도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신부님과 주교님이 입으시는 옷을 ‘수단’이라고 한다죠. 수단 색깔이 직급에 따라 다르시던데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주교는 붉은색을 입고, 추기경은 장밋빛을 입습니다. 신부는 검정색을 입죠. 붉은빛은 순교를 나타내고 까만색은 세상에 대한 죽음, 세상으로부터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은퇴 연령도 신부는 70세, 주교는 75세로 다르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차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교님의 신앙관과 인생관이 궁금합니다.
▲사제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성경말씀에서 시작된 만큼 매일 기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주님의 현존을 느끼는 기도를 하고 싶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이 뭘까. 뭘 원하는가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는 말처럼 신학생들에게 묻는 마음을 놓지 않고 살면 될 것입니다.
-주교님께서는 보좌주교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시게 되는지요.
▲교구 내에서는 중요한 회의 중 주교님이 주재하는 행사가 있고 건축위원회에서 주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총대리주교로서 주교 임명당시에 전결처럼 맡겨진 것이 수도자 담당입니다. 교구 신부와 남녀수도자 활동을 돕고 각 수도회 인사 다니고 국장신부 2명과 교구 감사와 교구 지적, 현장 사목을 담당하죠.
물론 격려도 해주구요. 총대리주교로서 유 주교님이 맡겨주신 권한을 갖고 교구 전반에 대해 처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죠. 신자가 다리를 절면 팔을 내 어깨에 얹게 해주는 게 목자라고 생각합니다. 유 주교님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신부님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많은 말을 들어야죠. 저는 모든 운동을 다 좋아합니다.
-주교님은 살아오시면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20년전 사제서품 받던 순간이지요. 삶을 완전히 바꾸고 다른 길로 가는것이니까요. 서른 셋에 사제 서품 받고 만 20년만에 주교 서품을 받네요 오늘 하루 잘 살았으면 지난날을 접어놓고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주교님께서는 가톨릭 신도들을 비롯해 저희 중도일보 독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가장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때 신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 사제로서의 삶을 보면 의식이 투철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셨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투사로 작정하고 세상에 더 깊이 관여하셨죠. 교회는 세상의 빛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교회가 친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상과 교회가 하나이던가. 거리를 두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등 조절의 필요가 있죠. 교회가 세상을 더 행복하게 해나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안에서 정말로 평화롭게 행복하게 존중 받는 세상이 되도록 하려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선입견이나 욕심을 버리고 서로 하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담, 정리=한성일 사회단체팀장. 사진=손인중 기자
□ 김종수 주교는?
▲56년 대전 출생 ▲대전고, 서울대 국사학과와 대학원,가톨릭대 신학부, ▲89년 사제 수품 ▲대전교구 논산 부창동 본당 보좌 신부 ▲교황청 성서대학(성서학 석사) ▲대전교구 해미본당 주임신부 ▲대전가톨릭대 교수. 학생처장 교리신학원 원장▲대전가톨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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