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마지막 중고제, 심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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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마지막 중고제, 심수봉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1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최충식이라고 합니다!” 처갓집 처음 가서 관등성명을 댔더니 “안강최”요, “강뿔따구 최고집”이라며 고집 쪽으로 일가를 이루겠구나 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최씨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난다는 말을 듣고 산다. 도리 없다. 최영 장군의 원형적 인물이 내 안에 기거한다는 ‘성급화의 오류’를 담담히 수용하는 수밖에.


그런 유추법에서 보면 심씨 성을 가진 규수는 효심이 극진해야 한다. 한자 심(沈)은 ‘잠길 침’, ‘가라앉을 침’. 물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최씨가 최영 장군으로 소급되는 것처럼 심청전의 심씨가 영원한 현재로 현현한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이 심리 패턴을 따라가면 가수 심수봉과 맞닿는다. 단조곡 「그때 그 사람」의 심수봉. 시바스 리갈을 마시며 심수봉류 트로트를 듣다 돌아간 대통령의 참극을 빼고 그녀를 말할 수 없다. ‘날지도 못하는 새야. 무엇을 보았니….’

▶판소리의 음악적 계보를 ‘제(制)’라 칭한다. 전라도 동북지역 운봉, 구례, 순창 등지에 동편제(東便制)가, 전라도 서남지역 광주, 보성 등지에 서편제(西便制)가 전승된다. 중고제(中高制)는 충청과 경기 남부의 소리제이지만 여세가 미약하다. 중고제의 마지막 맥을 잇는 지킴이가 심화영이다.

심화영은 심수봉의 고모다. 충남도 무형문화재(승무)인 심화영은 소리꾼 심정순의 딸. 심수봉의 증조부 심팔로는 피리 명인, 아버지 심재덕은 민요 채집가였다. 큰아버지 심상건은 가야금 명인, 작은아버지 심사건은 인간문화재 소리꾼이다. 심화영의 오빠가 태안에서 꾸리던 식당은 명창 이동백과 김창룡의 중고제 산실이었다. 중고제는 철종 때 한송학이 창시하고 바로 김창룡 등이 계승한 유파였다.

▶서산의 중고제 가문에서 태어난 심민경. ‘수봉(守峰)’은 “지족선사가 황진이를 안아 도를 그르쳤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그녀를 홀연 껴안던 스님의 작명이다. 살다보면 사면초가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림자(shadow)’라 부르는 제3의 대상이 등장한다. 개천에 빠진 심봉사 앞 봉은사 주지도, 심수봉에겐 속리산 자락 그 스님도 그림자일 수 있다.

▶세습 예인의 종가, 그 핏줄내림에서 나온 재현일까. 실마리일까. 심수봉은 반음(半音)을 즐겨 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연주자들이 딱 질색하는 C샤프 마이너다. 그녀 목소리에 최상의 음역인걸 어쩌랴. 중고제도 반음이 많고 소리끝이 높다. 희비의 강변들, 부침의 여물목을 지난 그녀의 꺾어짐을 슬플 때 들으면 관세음이 십구 응신(應身)으로 화하고 억천 분신(分身)으로 나타나는 듯 들린다.

▶턱없이 멀리도 돌아왔다. 인터넷을 열자마자 ‘오드리 헵번’의 포스팅이 눈에 들어온다. 조회 수 9만. ‘음원 저작권 위반, 70만에 합의했습니다’란 글이다. (저작권 합의금은 동영상 300만원, 카페 150만원, 개인홈피 100만원 정도라 한다.) 혹시? 수십 명의 오드리 중 내 카페에 열심히 댓글을 달던 그 오드리 아닌가! 몇 해 전, 댓글을 무시한 죄목으로 그녀에게 사이버공간에서 ‘절교’당했었다.

불법 복제 순위인 ‘길보드 차트’에 심수봉이 올라 있다. 역설적이지만 인기가 ‘대중적’이란 뜻이다. 아픈 고난과 고비를 겪은 여자만이 부를 수 있는 심수봉 노래는 진통·진정 효과가 있다. 심수봉의 심수봉스러움은 사람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깊은 길을 아는 데서 나온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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