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협상 시한이 끝나고 전운 감도는 국회를 삽입 쇼트로 연결짓는 것은 직업적인 병집이 아닌가 싶다. 성탄절 휴전이 그때 이후 다시는 못 이뤄졌다는 결말을 미리 알아 더 감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탄절 휴전이라는 말에 두 번 속았거나, 삼국지 장면에서나 본 공성전(攻城戰)을 본 뒤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문 닫고 귀 막은 법안전쟁, 입법전쟁에는 휴가도 휴전도, 참호에 나와 부르던 평화의 노래도 실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오직 적을 공포에 몰아넣으면 이긴다는 믿음, 매력적인(sexy) 무기가 아군이 사기를 올린다는 전장의 법칙이 전부인 듯했다. 이스라엘군이 괴기스런 곤충 모양의 공격헬기로 시리아군 전차 승무원들의 사기를 뚝 떨어뜨린 것처럼, 해머와 쇠톱을 그러한 섹시한 무기로 착각한 것일까. 그 해머와 쇠톱에 디몰리셔(파괴자), 테리블(공포)과 같은 고대 공성 무기의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당장 보니 아니나다를까, 감춰둔 무기라고는 직권 상정, 강행 처리, 실력 저지 같은 것들이다. 성탄절 휴전의 진중에서는 스코틀랜드군의 백파이프 연주도, 독일군의 열창도, 적과의 합창도 들려오지 않았다. 전쟁의 괴로움을 잊으려던 병사들의 몸부림 같은 건 털끝만큼도 안 보였다. 불합리성을 제거하는 지혜나 불합리성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지혜조차 없었다. 화해의 가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회의 성탄절 휴전은 사기극임을 초등생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싸우면 “여기가 국회냐”며 말린다는 초등생들이 오늘따라 성숙해 보인다. 지역구 가기가 겁난다는 충청권 의원, 싸우긴 했는데 딸이 볼까봐 카메라에 안 찍히려 애썼다는 장관 출신 의원의 푸념은 왜인지 공허하다. 그림과 전쟁은 멀리 떨어져 보라고 한다. 가까이 보나 멀리서보나 기적은 보이지 않는다. 성탄절까지 대화하겠다는 휴전 같지 않은 시한부 휴전 선포는 변형된 전쟁 선포였던 것인가. 올해도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이 뽑아낸 기적 같고 꿈 같은 엔딩 장면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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