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기(杞)나라 사람'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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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기(杞)나라 사람'의 교과서

  • 승인 2008-12-18 00:00
  • 신문게재 2008-12-1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아이들 책에 ‘누드교과서’가 있어 검색창에 찍어 보니 ‘성인키워드’란다. 유해 매체물로서 성인 인증을 받으라니. 왜 위태로운 책이름을 지었을까. 글을 쓰다 보면 걱정이 늘어난다. 오늘은 사자에 물려 죽은 전주동물원 호랑이를 걱정했고 남은 호랑이들과 물어 죽인 사자와 대전동물원 맹수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기우인가?


목적을 가진 글
쓰기에도 지나치게 걱정하는 기우(杞憂) 같은 것이 앞질러 필요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하늘이 안 무너지는 이유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기우가 창조를 위한 필요조건일 때도 있다.

짐작했겠지만 사진은 ‘좌편향’ 딱지가 붙어 묵사발이 된 책이다. 저 책을 아이가 달달 외워 대학에 갔다. 과거를 오래된 미래라고 믿는 입장으로도 기가 막히다. 거짓과 왜곡이 있어 고쳐도 절차나 상식이 있다. 빨간펜 식 첨삭지도가 “나쁜 선례”라는 저자들의 분노도 그것이다. 앞서 전교조 대전 및 충남지부는 교육청과 교장단의 근·현대사 교과서 개입 중지를 촉구했다.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 유무는 검토할 겨를이 없었음을 밝힌다.

사실이 어떠하든 국가주의가 빠진 국사 교과서란 형용 모순이다. 거기에는 이긴 자의 시각이 있다. 국어책도 그렇다. 황순원의 <소나기>, 피천득의 <인연>은 순수의 이름으로 시대 갈등을 애써 외면하는 데 동원됐다. 서쪽 하늘 낙조를 보고 ‘감개를 억누를 길 없다’는 천관우의 <그랜드 캐니언>은 주체 못할 미국 선망증이 담겼다.

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텍스트를 음미하면 한 시대가 보인다. 실탄 공급하듯 ‘우편향’ 특강을 하는 지금이 언젠가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역사는 기록자의 기록이다. 아테네를 이긴 스파르타는 기록자가 없어 알려진 게 적다. 필자 세대만 해도 많은 정치화된 군인들이 쓴 책으로 공부했으며 교육은 상징 권력을 만드는 장소였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김신호 대전시교육감은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금성교과서는 국가가 검인정했다. 어떻게 바꾸라고 하나?… 상식이다. 그런 것이 법치주의다”라면서도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면 검정했더라도 수정 권고를 할 수는 있는 것”이라 했다. 교과부는 수정 권고와 추가 수정을 거친 교과서를 곧 공급하겠다 한다. 이른바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에 따르면 대전 37개 고교에서 ‘좌편향’ 교과서를 채택했다. 충남도내 86개 고교의 54.7%인 47개교가 금성출판사를 선택했다.

살 한 덩이를 베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만큼…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게, 목숨도 위태롭지 않게….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의 말이다. 딱 그만큼 베듯이, 역사적 팩트를 수정할 수 없다면 이론에 반론, 반론에 반박, 반박에 논평은 쳇바퀴 돌듯 끝나지 않는다. 역사는 모 아니면 도가 아닌 것이다.

우측에 서면 좌측 사람들은 좌편향으로 보인다. 어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좌우가 바뀌든, 상하나 대각선이든, 똑바른 정면경이 되든지, 고정불변 아닌 다양한 관점을 길러줄수록 좋다. 그럴 때 일본 우익 교과서와 중국 동북공정 교과서를 너끈히 이길 수 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실은 비난이다. 그래서 혼자 이렇게 기(杞)나라 사람이 되어 좌뇌와 우뇌에 혼란을 주는 역사난독증을 걱정하는지 모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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