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주민센터
그 운동은 남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웃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면서 잘 발전되나 싶었다. 쌀독에는 잔잔한 어머니의 마음이 흘렀다. 빵이 부성이면 밥은 모성이란 확신도 그때 들어, 각 동 복지만두레의 쌀독이 바이러스처럼 전국 읍·면·동에 전파됐으면 했다.
그리고 매일의 인사인 “밥 먹었냐?”가 정보화사회에도 계속되길 바랐다. 중학교 때의 평화봉사단원 스튜어드를 빼고는 밥 먹었는지 묻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다.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나온 한 일본 유학생은 “ ‘밥 먹었어?’가 마음과 몸과 생활을 걱정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이라 했다. 뭐든 먹으면서 살아온 국민답게, 우리는 나이조차 취(取·일본)하거나 보태지(添·중국) 않고 ‘먹는다’
이토록 먹는 것, 밥을 중시하고 거의 신성시한 차원으로까지 격상시켰던 만큼 남 배곯는 사정도 잘 안다. 중국인이 쌀을 ‘보살(菩薩)’로도 쓰지만 우리만큼은 아니었다. 밥은 산 자와 죽은 자 간 의사소통에도 쓰인다. 삼신주머니에 쌀을 넣으면 그대로 신앙 대상이었다. 음복(飮福)의 이름으로 밥을 나눠먹는 제사는, 빵을 “내 몸이니라” 하며 “나를 기념하라” 하는 종교의 성찬식을 닮았다.
함께 더불어 밥
나눔의 그 쌀을 보면, 80㎏ 한 가마에 200만원 하는 쇠똥구리 유기농 살이 안 부러웠다. 그렇게 익명의 후원자와 수혜자의 정이 오가던 나눔의 쌀독이 어쩌다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끊긴 지원금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무나 퍼가서 직접지원으로 바뀌었다고도 하지만, 다른 정치적인 이유를 대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공동체 문화를 선도하는 대표 복지프로그램으로 평가받던 쌀독이 불신의 독이 된 상황이 아쉽다. 이웃사랑은 휘황한 사회복지사업으로만 구현되지 않는다. 쌀독이 사랑의 쌀뒤주로 영원히 비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 없다. 어제도, 쌀봉투를 이웃에 전달하는 모습에서 대전의 후한 쌀독 인심의 부활을 한 번 그려봤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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