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구
▲지난 1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전국 모금을 계획하고 있고 대전은 5일부터 시종식을 시작으로 24일까지 자선냄비 모금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대전 인접지역인 논산, 금산,조치원을 비롯해 시내 23개소에 자선냄비를 설치했습니다.
대전 시내에서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유성까지의 거리와 백화점 등에서 자선냄비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대전톨게이트 자선냄비 모금이 실시됩니다. 봉사자는 연 2500여명에 이르죠. 대전 모금액은 약 1억6100만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2008년도 자선냄비 모금 목표액을 32억원으로 잡고 있고 서울시내 34개소와 전국 76개 지역 230개소에서 동시 활동하게 됩니다. 자선냄비 봉사자만도 연 3만여 명에 이르지요.
-지난해 모금된 자선냄비 모금액은 올 한 해 동안 어느 곳에 얼마나 배분되었는지요.
▲부여 나눔의 집 등 무료급식 지원과 영세노인 위문, 결식아동과 심장병 어린이 치료 지원.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지원 등에 쓰였습니다. 또 청소년, 여성, 아동의 성폭력 예방사업과 난방비 지원. 생활보호대상자와 저소득층 치료비와 생활용품 지원을 비롯해 노인과 여성 복지시설 보강 수리 등 복지시설 시설 복구에도 지원되었죠. 올해는 지난달까지 약 1억5000여만 원의 예산을 집행했습니다.
-구세군은 이웃에 대한 온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구세군은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성서를 바탕으로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빵’을 들고 선교하는 기독교 단체입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바로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마음입니다. 자선냄비의 빨강색은 사랑, 나눔, 동참, 실천을 의미하죠.
구세군 자선냄비는 지난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배 한척이 파선 당해 난민들이 생겨났습니다. 경제 불황이었던 당시, 시에서는 그들을 위해 도울 예산이 없었고 난민들은 추위에 떨며 굶주린 채 지내야만 했습니다.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가 이를 안타까이 여기며 도울 방법을 찾고 있던 중 자신이 영국 리버플에서 보았던 부둣가에 놓여있던 자선을 위한 ‘심슨의 솥’을 기억해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맥피 정위는 시당국으로부터 오클랜드 부둣가에 솥을 걸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솥을 걸어 놓게 됐죠. 그 날 모금된 돈으로 난민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끓여 먹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자선냄비는 현재 세계 119개국에서 모금활동을 하고 있고. 추운 겨울 이웃돕기 운동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구세군은 기독교 교회인 동시에 사회봉사단체로서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구세군이 지난 1908년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개시한 이후 선교와 사회봉사에 주력하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사회사업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명성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자선냄비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는 지난 1928년, 당시 한국구세군 사령관이었던 선교사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 돕기 거리모금을 시작한 이래 올해로 8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각 시대마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구세군 사회사업을 뒷받침해왔지요.
한국구세군의 사회사업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실직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일과 HIV/AIDS 예방과 복지사업, 암환자 호스피스센터로까지 확대돼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세군에 속한 사업장은 전국 328개 교회와 275개 병설시설, 67개 전문시설이 있고 구세군 각 교회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사관으로서 평생을 살아오셨는데 보람을 말씀해주신다면?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입니다. 어느 앵벌이 소년이 추운 겨울 앵벌이해서 모은 돈을 자선냄비에 모두 넣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저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생각 끝에 대구 역 앞에 청소년 상담소를 개설하고 가출청소년 귀가시키기와 인신매매로 붙잡혀가는 부녀자들을 구출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대전에 와서 목회할 때도 가출하는 청소년들을 대전역 앞에서 기다렸다가 상담을 통해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사관으로서의 가장 큰 보람이죠.
지난 92년 서울에서 목회할 당시에는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이슬기라는 어린이를 국립의료원에 입원시키고 심장병 수술비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국립의료원과 결연하게 되고 구세군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해외로까지 확대하게 됐습니다. 국내 어린이뿐만 아니라 중국 연변, 블라디보스토크, 몽골까지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확대해 연 500명에서 1000여명의 어린이들이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세군 사관으로서 느끼는 또 하나의 큰 보람입니다.
목회를 통해서는 가정 사역을 보람으로 꼽고 싶습니다. 주일 설교를 듣고 상담을 통해 이혼 직전에 있던 가정들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세군 사관으로서 뿌듯함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구세군 사관으로서 어렵고 힘드신 점은 없으셨는지요.
▲부모님께는 늘 죄송합니다. 주일이 명절과 겹치면 부모님을 찾아뵐 수 없을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죠. 목회를 하면서 주일 예배 인도를 해야 되니까 주말에도 못 찾아뵙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불효자입니다.
주위 분들은 구세군 사관은 항상 부부가 같이 사역을 하면서도 부부 활동비를 모두 합해봤자 160여만원에 불과한데 어찌 자녀들 교육비 대며 생활할 수 있느냐고 묻곤 합니다. 구세군 사관은 월급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여느 교회들처럼 목회자 사례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세군 본영에서 최소한의 활동비만 지급될 따름이죠. 그러나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궁핍함을 못 느끼도록 다 채워주시는 것을 실감하고 삽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마음이 풍요로우면 모든 게 감사하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마음을 열면 길이 보입니다. 손에서 내려놓으면 행복해지고 자신을 비우면 기쁨이 배가 됩니다. 그러면 이웃이 보입니다. 연말을 맞이해 어려운 이웃들을 향하여 마음도 열고 지갑도 열어서 함께하는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정리=한성일 사회단체팀장. 사진 김상구 기자
□ 이재습 사관은?
▲1954년 경북 상주 출생 ▲1984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2001년 영국 국제 사관대학 졸업 ▲1984년 동대구영문 담임사관 ▲1990년 서울후생학원 사무장 ▲1991년 서울 강동영문 담임사관 ▲1997년 구세군대한본영 청년부서기관. 문학부서기관. 해외담당관 및 본영행정부 비서관 ▲2002년 구세군 영천영문 담임사관 ▲2007년 구세군 대전중앙영문 담임사관 ▲KNCC 한국기독교연합회 가정생활 중앙위원 ▲경찰청교경위원 ▲대전시기독교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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