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노후대책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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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노후대책 없다

  • 승인 2008-11-26 00:00
  • 신문게재 2008-11-2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기생이 늙으면 세 가지가 비고 한가지가 남는다고 말한다. 비는 것은 재산, 육체, 명성이고 남는 것은 이야기. 색 바랜 옛 이야기만이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애상으로 남을 뿐. 미련과 후회 한 점, 죽음 한 점 깃들지 않는 삶이 있을까만.


늙으면 세 가지
슬픔이 있다. 기력이 약해져 ‘아프다’. 구름같이 몰려들던 사람들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져 ‘외롭다’. 소화 기능이 안 좋아 잘 먹지 못해 ‘배고프다’.

늙으면 세 가지 모습으로 괴롭다. 자신의 삶의 방식의 신봉자로서의 고집과 욕심과 참견이 주위를 괴롭힌다. 공자 말씀 그대로, 젊을 땐 혈기가 안 잡혀 여색을, 장년에는 혈기가 굳세 다툼을, 늙으면 혈기가 쇠하였으므로 탐욕을 경계하라.

늙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안 쓸쓸하다. 종교, 봉사활동, 취미. 늙으면 건강, 경제력, 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 셋이 있어야 자부심과 자제력도, 내적 행복도, 관계적(關係的)인 여생도 구가할 수 있다. 돈과 건강은 노후대책의 핵심이다.

청주시의 첫 사회통계조사 결과(26일자 19면), 60세 이상 10명 중 4명 이상(42.7%)이 ‘노후대책이 전혀 없다’고 한다. 청주 사정은 나은 편으로, 서울시 설문 결과는 10명 중 6명이 ‘사실상 노후대책이 없다’. 정부 조사에서는 노인 10명 중 7명이 ‘노후대책이 없다’. 무방비 상태의 빈곤 노령층이 두터워진다는 적신호다.

사람은 노동의
대가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돈이 왜 생겼나. 다른 사람 것을 내 것과 바꿔 얻다 보니 화폐경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식 앞의 부모는 이러한 경제 관념이 허물어진다. 모든 걸 다 바쳐 키운 자식도 노후대책이 될 수 없다고 보면 노년은 불가능한 임무, ‘미션 임파서블’과도 같다.

늙으면 거대한 산(山)만 가로막는 것 아니다. 시시한 것도 뜻밖에 중요하고 까다로워진다. 쪼글쪼글해진 피부엔 뜨거운 물, 때 밀기, 알칼리성 비누, 이 셋을 피해야 한다. 건조증 때문에 등 긁어줄 사람이 아쉬울 때도 노년기다. 천하를 도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노후 좌우명은 시시하다. 감기 조심하라, 넘어지지 마라, 버려라. 시시하면서 절실한 것들이다. 늙을수록 논리와 이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본능이요, 그래서 아이가 된다. 남자는 영원한 아이이고, 여자는 늙어도 여자라던가.

괴로워도 삶에 대한 애착을 안 버릴 때 “삶이 있다” 한다. 너구리처럼 늙지 말고 서서히 곱게 늙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빠르다고? 나이로 줄 세우면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끝이 안 보인다. 그는 47세다. 셰비녜 부인이 태양왕 루이14세를 일컬어 “늙은이”라고 할 때가 47세 때였다. 빠르다기보다 늦은 것이다.

늙으면 세 가지 후회를 한다고들 한다. 좀더 참을걸, 좀더 베풀걸, 좀더 즐길걸. 자신의 늙음에 지나친 친절을 베풀 것도, 무례를 베풀 것도 없이 담담하게 살아야겠다. 늙음이 곧 불행이고 젊음이 곧 행복은 아니다. 성별, 나이 등을 따져 어느 한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행복 또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 통계의 결과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노년은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노후대책’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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