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거울아, 양심 없는 거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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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거울아, 양심 없는 거울아

  • 승인 2008-11-05 00:00
  • 신문게재 2008-11-06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누구게? 백설공주님이요. 그 거울이 왜 왕비에 충성하는 척할까? 당신은 심보가 시커매서 밉상이라고 말해 왕비의 나르시시즘에 태클을 걸든지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앗쌀하게 거시기해불면”거울 본래의 기능에 더 맞지 않을까?


왕비가 백설공주를 미워하는 이유는 공주의 미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울에 대한 배신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대전과 일부 시.군 지역의 상습 불법투기지역에 설치한 양심거울을 보고 한가한 생각이 겹쳐진다. 부산 사하구 등에서 효과를 봤다 하니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벤치마킹한 양심거울. 거기에 비친 얼굴을 보고 양심이라는 이름의 준법의식이 작동할 거라는 애처로운 기대가 담긴 거울이다.

하지만 “당신의 양심도 버리시겠습니까?”, “당신의 양심을 비춰보세요”라는 호소가 잘 먹히지 않아 양심불량의 거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이 양심거울을 보는 편인데, 주로 미용실에서 나올 때마다 머리가 잘 잘렸는지 넥타이가 비뚤어지지 않았는지 살피는 순수한 용도에 국한한다. 자아 관찰, 존재 관찰의 ‘감(鑑)’은 못 되고 그저 낯을 비추는 ‘경(鏡)’의 수준이다.

사람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충실한 원리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속성에서는 양심거울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어느 경우든 72만원 상당의 이 거울이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했긴 마찬가지다. 양심거울 덕에 무단투기가 사라졌다는 곳도 있지만 처음의 신비감은 저만큼 달아난 느낌이다. 비벼주는 전주비빔밥이 맛있냐, 안 비벼주는 비빔밥이 더 맛있냐가 각자 입맛에 달렸듯이, 생각 나름이라면 할 말은 없다.

확실한 것은 저 거울을 매개로 시민·군민·구민을 양심목욕시켜 윤리적 잣대로 활용하려는 지자체의 촌철살인 수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양심거울 밑에 쓰레기와 양심을 동시에 버리는 몰염치 앞에 거울은 이렇다 할 심리적 강제나 거리낌, 망설임의 부담이 되지 않았고 무기력했다.

도리어 양심에 반해 자신의 자유를 회복하는 도구로나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심과 안면 몰수하기로 작심하면 양심거울을 아무리 번쩍번쩍 닦아놔도 하찮은 장식품에 그친다. 원래 4차원의 양심거울은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기 때문에, 양심거울을 마치 옛 제사장들의 신령한 거울처럼 무단투기 해결사로 믿을 게 못 된다. 그럴 용도라면 그 자리에 고성능 감시카메라로 대체하는 게 효과적일지 모른다.

CSI 효과라는 것이 있다. 드라마 속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과학수사대는 모든 범죄 해결이 사흘이면 끝난다는 환상도 심어줬다. 그래서 쩍하면 현실 속의 우리 경찰이 도매금으로 억울한 욕을 먹기도 한다. 양심거울이 그 같은 오해를 살 수 있다. 양심화분, 양심화단, 양심거울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명령으로 생각지 않는 한, 양심으로부터 도망치기는 계속된다. 쓰레기 문제는 고난도의 스킬이 요구되는 문제다. 그것 하나면 꼭 양심을 지킨다는 상징체계처럼 거울을 맹신하거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거울에 배신감 가질 필요는 없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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