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럴(=성매매를 할) 수도 있고(17.9%)와 문제될 게 전혀 없다(2.4%)고 긍정하는 시각에 대한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절대로 안 되며(31.0%)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48.4%)는 다수 학생으로 위안삼다가도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무뎌졌을까 사실은 겁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양성보다 음성이 무서운 것이 성매매의 경우다. 플래카드 걸고 장안동과 유천동의 방석집 해체에 정신 쏠린 사이,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차린 프리랜서 성매매의 암약상을 보라. 이 하늘 아래는 섹스가 여성이 제공하는 서비스이며 남성은 대가를 지불한다는 원주민이 살지만 ‘싸고 질 좋은(?) 미제 쇠고기’ 찾듯 풋풋한 ‘일반녀’를 찾는 우리 의식보다야 덜 원시적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7년 전 당시 여성부 조사로 성인 남녀 41%가 성매매가 불법인지를 몰랐었다. 미아리 텍사스에서 마주친 중3생이 진짜 남자 됐다고 자랑하더라는 김강자 한남대 교수(전 종암경찰서장)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이 좀 그렇다.
다른 조사로도 대학생 10명 중 6명은 성이 사랑의 표현이며, 10명 중 4명은 애정 없는 상대와 ‘언제든지’, ‘어느 정도’ 섹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 안 와야 하지만 대학생 20%가 동기가 부여되면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주체의 처지가 극단으로 개입된 ‘입장’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입장과 관점은 다르다. 등록금, 생활비로 어려우면 로라 D처럼 거침없이 팬티를 내릴 수 있다는 게 부디 편파적 ‘관점’이길 바란다. ‘천리마의 터럭 하나가 희다고 그 말이 백마라고 미리 단정해선 안 된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이덕무)로 심경을 마무리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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