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뿌리공원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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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뿌리공원의 ‘뿌리’

  • 승인 2008-10-16 00:00
  • 신문게재 2008-10-17 21면
  • 최충식논설위원최충식논설위원
돼지도 종자가 있고 강아지에게 족보가 있다. 하물며 사람이야. 우리처럼 족보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쌀밥의 끈적임같이 엉기기 좋아하는 집단주의는 문중마다의 종친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도, 뿌리공원에서 전주최씨를 만나면 뻐근하고 김수로왕 후손을 자처하는 처가 문중(김해김씨) 유래비가 없어 투덜댔으니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전통사회에서 목숨보다 중한 걸 걸 때 ‘성(姓)을 간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 통성명하면 으레 본관을 묻고 돌림자를 가린다. 외국인에게도 그러는데, 도를 넘어 “결혼했느냐”고 꼬치꼬치 따지다 영어에 서툰 나머지 “처녀냐”고 묻는 불상사까지 발생한다. ‘신원조회’ 좋아하는 성벽 때문에 범하는 결례다. 아무튼 이런 특유의 혈연 애착을 파고든 아이템이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이다.

이번에 새로 세운 64개 성씨 유래비를 찾는 종친회 전세버스들은 개체 특성을 간직하려는 기본 욕망, 어떤 의미든 성씨에 대한 집착이 죽지 않았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가 합리적 논거 없이도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하는 것을 ‘신화’로 봤다면 나는 ‘성씨’를 그런 힘으로 본다.

뿌리공원의 성씨 내력을 읽다 보면 성씨담은 어느새 신화가 되어 있다. 귀신 낮밥 먹는 소리랄지 모르나 족보 정리 단계가 모호했던 탓이다. 최초의 족보인 안동권씨성화보(1476년) 등 일부를 빼면 족보는 한다고 해야 우리들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 적으로 소급된다. 위조도 많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바꾸는 환부역조의 시절을 겪은 다산(茶山)은 양반이 되어 군역(병역)을 면피하기 위해서라 했다.

실제 족보 만들기를 본격화한 지는 200∼300년을 넘지 않는다. 삼국시대 호구조사나 통일신라기 청주(서원경)에서 작성된 정창원장적을 호적의 원형으로 우길 수는 있다. 고려시대의 족도(族圖)라는 가계표는 양반과 천민 변별에 무게를 뒀고 권문세족에서나 쓰던 것이었다. 조선시대는 호구단자에 성명과 본관 등을 기록했다.

뿌리를 더 캐면, 조선 초기의 양반 인구는 3∼4%였다. 성씨 대부분은 17세기 이후 붙였고 근대 들어서는 면서기 붓 가는 대로 적기도 했다. 그렇다고 푸들 족보만도 못하다고 비하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민 모두가 양반임을 증명하는 뿌리공원이 버티고 있으니까. 기존 역사 자원이 아닌 집단기억 속에 떠도는 정체성을 불러낸 대전 중구청의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뿌리를 일깨워준다”(중구청 관계자의 말)는 신념에 너무 얽매일 까닭은 없다. 그곳은 오리배를 타며 확인하는 배타적 가족주의 마당도, 카메라 앞에서 삽질하는 유력 인사의 공간도 아니다. 내가 나임을 득도하는 공간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곳은 또한 지난주 뿌리축제에서 비빈 500인분 ‘다함께 한 뿌리 비빔밥’처럼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귀천(貴賤) 의식을 깨는 실천 공간이요, 가족의 의미를 찾는 화해 공간, 아니 배설과 생식을 담당하는 항문과 음부 같은 기관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 시대의 ‘뿌리’는 진실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고 그 원초적 끈을 붙잡는 곳이 뿌리공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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