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위험한 나비의 꿈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위험한 나비의 꿈

  • 승인 2008-10-09 00:00
  • 신문게재 2008-10-10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장주의 호접몽 얘기가 좋다. 힘닿으면 문학적 소재로 빚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게다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최초로 논한 것 아닌가. 꿈에서 화들짝 깨어보니 내가 나비다. 아니,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인가. 사이버공간에도 나비가 된 사람들이 수없이 산다. 그곳에서 사물 변화를 겪지 않고 구애받지 않을 자유는 자유대로 두고…


착각은 착각으로 두고, 스스로 나비인지 장주인지 모르는 사람이 현실 속 사람을 죽살이의 늪에 몰아넣는다면 얘기 차원은 달라진다. 악의적 댓글을 다는 악플러, 분석하면 [←惡pl[←惡+reply]+er]의 복잡한 얼개인 악성 나비들은 사람이 죽어도 덤비는 습성이 있다.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한 모델 김지후의 미니홈피가 그래서 폐쇄됐다. 박성효 대전시장도 기자 앞에서 “나도 악플 피해자”라며 나비 퇴치에 관심을 보였지만, 뻔뻔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나를 대중 앞에 벌거벗겨 세우는 안티 1명이 나머지 인류 전체보다 무섭다. 뉴스 게시판 이용자 120만명을 분석했더니 악플러가 750명 정도였다. 이 750명이 독무대로 온 국민을 쥐락펴락한다.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우리같이 글쟁이들은 밥이다. 본지 사진부장도 한반도 모양 구름 사진으로 상을 탔다가 댓글 연못의 개구리 신세가 되어 돌을 맞아야 했다. 용두동 하늘에 걸린 십자가가 화근이었는데, 그럼 교회 십자가라도 떼고 찍으란 말인가.

이성에 앞서, 사람은 감정을 지녔다. 화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겁에 질리면 창백해지며 싫은 사람이 닿으면 피부가 알고 싫다 한다. 주먹이 근질거린다 하는데, 초조하고 울분을 느끼면 가려움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키보드가 바다도 가른다고 믿는 악플러가 멋대로 휘돌아다니다 편히 잠든 사이, 목석이 아닌 피해자들은 댓글을 읽고 밤새 괴로워한다.

바다로 생각하면 인터넷은 해무 자욱한 고해가 다 됐다. 이름이 뭘로 굳어지든 ‘최진실법’에 국민 59%가 찬성(충청과 영남, 여성과 30대의 찬성률이 높다)한 사실은 그 심각성을 인정한 것이다. 댓글문화랄 것도 없이, 예전 버스 차부의 화장실 담벼락만 못한 욕설급 의견을 댓글뉴스급으로 승격시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농약 묻은 과일과 채소에 그러듯이 이 유해한 꽃다발(Toxic Bouquets)에도 호들갑 좀 떨어야 한다. 배설물을 내뿜는 댓글민주주의 앞에 블라인드를 치고 솎을 건 솎아야 다른 풀도 건강하게 자란다.

희망이 안 보이는 암울한 인생 밑바닥을 ‘막장’이라 한다. 생산적인 토론과 숙의를 가로막고 건전한 여론 형성을 뭉그러뜨리는 막장문화는 갈 데까지 갔다. 공론장(公論場) 개념을 현실에서 구현하리라던 위르겐 하버마스의 믿음도 물건너간 상태다. 자정과 성찰성에 기대기에는 이미 어려워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끝을 찾는 이유는 처음으로 돌아가자 함이 아니던가. 잘못된 뒤집기문화는 다시 뒤집혀야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악플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매 때마다 논점이 빗나가고 있어 안타깝다. 어떻게 해서 어두운 밀실에서 팔랑이는 비몽사몽의 나비들을 밝은 광장으로, 안전한 청산으로 인도하느냐의 목적의식이 빠졌다. 따지고 보면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도 아니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